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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는 아이폰 당신이 몰랐던 잡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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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호 30면

1막. 1984년 매킨토시 런칭 드안자 커뮤니티 컬리지의 플린트 공연예술센터. 매킨토시(맥) 런칭 행사를 앞두고 다들 분주하다. 스티브 잡스(마이클 패스벤더)는 맥이 세상을 구하리라는 믿음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감히 첫 달에 100만대를 팔 것이라 단언하며 사람들의 기대치를 높인다. 기존의 컴퓨터와 달리 친근하고 따뜻한 맥이 ‘헬로’라고 말하는 단 한 순간을 위해 버전 바꿔치기도 서슴지 않는다. 그에게는 그것이 1등석과 이코노미석처럼 하늘과 땅 차이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허나 정작 자신을 찾아온 여자친구와 딸에게는 매몰차기 짝이 없다. 자신의 자식일 확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이유다.


2막. 1988년 넥스트 큐브 런칭샌프란시스코의 전쟁 기념 오페라 하우스. 매킨토시의 실패로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는 넥스트로 화려한 복수극을 준비한다. 디자인적으로 한층 완벽에 가까워진 큐브는 새로운 변화를 기다리던 이들을 열광케 한다. 허나 새 제품을 소개하는 과정은 절대 녹록지 않다. 매킨토시 런칭 때처럼 그와 얽힌 악연을 풀고자 하는 이들이 줄이어 무대 뒤 대기실을 찾는다. 애플의 동업자이자 잡스의 절친이었던 스티브 워즈니악(세스 로건)은 묻는다. “잡스는 못 하나 제대로 박지 못하는 데 왜 하루 종일 ‘잡스는 천재’라는 기사만 뜨느냐”고. 잡스도 묻는다. “메트로놈과 지휘자의 차이를 아느냐”고. 당신이 악기를 제일 잘 연주하는 뮤지션이라면 자신은 그 오케스트라 전체를 총괄하는 지휘자라고 말이다.


3막. 1998년 아이맥 런칭 데이비스 심포니홀. 검은 슈트로 멋을 낸 모습 대신 친숙한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으로 등장한 잡스는 한결 편안해진 모습이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과 이제는 확고해진 스타일이 주는 안정감이랄까. 하지만 여전히 완벽한 암전을 위해 비상구의 불까지 신경쓰고 노고를 칭찬해달라는 동료의 간청도 가뿐히 흘려듣는 탓에 그간 이 좌충우돌 외곬수를 보좌해온 조안나 호프만(케이트 윈슬렛)도 백기를 든다. 애플의 전 CEO인 존 스컬리(제프 다니엘스)는 물론 딸 리사와의 갈등을 제대로 풀지 않으면 본인도 이제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영화는 매우 독특한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연극처럼 1막과 2막, 3막이 각 40분씩 차례로 이어진다. 16㎜로 촬영한 1막은 고르지 않은 느낌이 마치 그 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하고, 2막과 3막은 각 35㎜, 디지털 카메라 ALEXA로 촬영해 현실감을 높였다. 단 영화가 비추는 것은 오직 현재 뿐이다. 막과 막 사이의 시간을 통째로 뛰어넘고 지금 여기 프리젠테이션 준비가 이뤄지는 현장만이 존재한다. 그동안 잡스가 그랬던 것처럼 가장 혁신적이고 간결한 방식으로 세상이 갖고 있던 상식을 깨버리는 셈이다.


이토록 파격적인 연출이 가능했던 것은 드라마에 강한 대니 보일 감독과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가 트레이드 마크인 아론 소킨의 각본 덕분이다. 이들은 잘 알려진 잡스의 영광을 과감하게 생략했고, 주변 인물과의 갈등과 3번의 분기점에 집중했다. 상대방과 오고 가는 대화는 인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었고, 상황을 한층 깊이있게 후벼팠다. 캐릭터가 살아남은 물론이요, 좁은 무대 뒤편은 인생의 희노애락이 모두 녹아든 한없이 넓은 공간이 됐다.


우리는 다들 잡스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가 만든 아이폰으로 통화를 하고, 그가 만든 아이팟으로 음악을 들으며, 그가 만든 맥으로 일하는, 그야말로 그가 창조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이 또한 착각 아닐까. 우리가 아는 건 그가 만든 제품이지, 그가 안고 있는 고민은 아니었으니까. 실은 그 역시 아내 앞에 서면 못난 남편이고, 딸에게는 한없이 매정한 아빠이며, 동료들에게는 종종 아니 자주 지탄받는 평범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흠이 많은 인간이기에, 도움이 더 많이 필요한 사람이기에 도리어 더욱 완벽을 추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10일(현지시간) 열린 제 73회 골든 글로브에서 여우조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21일 개봉.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UPI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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