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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정담(政談)] “배우자 움직여라” 아마바둑 3단 문재인의 ‘사전포석’ 영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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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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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왼쪽)이 15일 기자간담회를 위해 문재인 대표와 함께 국회 회의실로 입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더불어 잘사는 게 경제민주화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국민의 믿음을 다시 얻는 데 전력하겠다. 그리하여 기필코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13일 밤 서울 종로 김종인 전 의원의 자택.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김 전 의원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문, 부부 동반 모임 3년 공들이자
김종인 부인 “그 정도면 맡아줘요”
‘여상신화’ 양향자 남편 우회 공략
이수혁은 여섯 번 찾아 “살려달라”
김연아·차범근 등 1000명 리스트

그때 정적을 깨고 “문 대표가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그 정도 했으면 좀 맡아 줘요”라고 거드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김 전 의원의 부인 김미경 전 이화여대 교수였다. 그렇게 해서 김 전 의원은 더민주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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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표는 14일 김 위원장 영입을 발표하며 “그냥 삼고초려(三顧草廬)했다”고만 했다. 하지만 김 전 의원과의 인연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대선 패배 후 문 대표는 부부 동반으로 김 전 의원을 만나 왔다. 부인 김 전 교수가 남편의 결단을 거든 건 그 인연의 결과였다.

 더민주의 인재 영입이 화제다. 수(數)에서도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을 앞서지만 참신함과 다양함이라는 질(質)이 더 관심을 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로 시작된 영입 인사들의 명단은 발표 때마다 포털사이트 검색 상위권에 올랐다. 3000억원대 자산가인 김병관 웹젠 이사회 의장, 이수혁 전 6자회담 초대 수석대표, 오기형 중국 통상 전문 변호사, 김빈 청년 디자이너,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재정 전문가 김정우 교수, 하정열 한국안보통일연구원장, 박희승 전 판사, 유영민 전 포스코 경영연구소 사장 등등. 더민주와 ‘색깔’이 다르고 정치권의 때가 묻지 않은 말 그대로 정치 신인들이어서다.

 하지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더민주의 영입 성과는 바둑 실력이 아마 3단인 문 대표의 오랜 포석(布石)의 결과라고 측근들은 전했다.

 문 대표는 지난해 2월 대표에 당선된 뒤 첫 인재 리스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정치권 주변 인사들을 최소로 하고 경제·안보·문화·스포츠 등의 전문가 500여 명의 리스트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초기 리스트엔 피겨선수 김연아, 축구감독 차범근 등도 포함됐다고 한다. 총선을 앞두고 이 리스트는 100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문제는 어떻게 설득하느냐다. 김종인 전 의원의 경우처럼 부부가 함께 ‘작업’을 하거나 묻지마 방문 등의 기법이 동원됐다. 문 대표의 한 측근은 “필요하면 지방도 마다하지 않고 대표가 직접 가서 만났다”고 했다.

 화제의 영입자였던 ‘고졸 여성 임원’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도 당사자보다 남편이 결정적 도움을 줬다고 한다. 삼성에서 만나 결혼한 양 전 상무의 남편은 처음에 부인의 정계 진출을 반대했다.

양 전 상무도 “사랑하는 사람이 반대하면 못한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자 문 대표는 부부를 함께 만나 끈질기게 설득했다. 마침내 남편은 “문 대표의 말에 확신이 생긴다. 나도 같이 도와줄 테니 한번 해 보자”고 고집을 꺾었다.

 특히 당에서 맨 처음 양 전 상무에게 연락할 때는 전화번호도 몰라 삼성전자의 대표번호로 전화했다고 한다. 첫 접촉을 한 핵심 당직자는 “양 전 상무가 처음엔 ‘후원금을 요구하려나 보다’는 생각으로 약속 장소에 나왔다고 하더라”며 “남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회사 인근 만화가게에서 만난 일도 있다”고 전했다.

 문 대표는 15일 유영민 전 포스코 경영연구소 사장의 영입식에서 “저는 유 사장을 책을 통해 만났다”고 했다. 실제로 영입 인사 대부분은 문 대표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최종 단계에선 반드시 문 대표가 나섰다고 한다.

문 대표는 ‘읍소’ 전략으로 매달렸다고 한다. 이수혁 전 수석대표는 “문 대표가 대여섯 번 찾아와 ‘저와 당을 살려 달라’”고 했으며 표창원 전 교수는 “‘진심으로 도와달라’는 문 대표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했다.

하지만 더민주의 영입이 주목을 받을수록 아쉬움은 더 크다고 당직자들은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직자는 “야권이 분열되기 전이라면 얼마나 화제가 됐겠느냐”며 “타이밍을 생각하면 아쉽고, 또 아쉽다”고 말했다.

글=강태화·위문희 기자 thkang@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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