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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들의 성서 ‘미슐랭’ 별 딸 만한 서울 레스토랑은?…62명 조사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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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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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식당 대표 디저트 ‘돌하르방’. 녹차무스·땅콩버터·스펀지 케이크 등으로 돌하르방을 재연하고 제주산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곁들였다.

문고판 정도 크기의 빨간 표지 책. 전 세계 ‘미식가들의 성서’로 불리는 ‘미슐랭 레드가이드’다.

톱10에 정식당·밍글스 포함 모던한식 4곳, 프렌치 레스토랑도 4곳…일식·중식 1곳씩, 이탈리안은 없어

셰프의 명성과 식당 비즈니스의 흥망을 좌지우지하며, 나아가 해당 도시의 관광업을 진흥시킨다고까지 일컬어진다.

116년 전통의 이 레스토랑 가이드엔 아직 아쉽게도 한국 편이 없다. 하지만 몇 년 새 일본 도쿄 편과 홍콩·마카오 편이 잇따라 나오면서 ‘미식도시 서울’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과연 2016년 서울에서 미슐랭 별을 딸 만한 음식점은 어디일까.

지금부터 그 즐거운 상상을 함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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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밍글스의 ‘양갈비 숯불구이’. 한국인 입맛에 익숙지 않은 양갈비를 된장에 5~6시간 재운 뒤 당을 섞은 장을 발라 비장탄에 구워낸다.

정식당, 밍글스, 피에르가니에르(롯데호텔서울), 라연(호텔신라서울), 레스쁘아 뒤 이브, 팔레 드 고몽, 팔선(호텔신라서울), 스시조(웨스틴조선서울), 류니끄, 가온.

‘2016 미슐랭 서울 편이 나온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미슐랭 별을 딸 가능성이 있는 레스토랑’ 10위권에 든 식당들이다.

국내 파인다이닝(fine dining·고급 코스 요리와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음식점) 미식 문화를 이끌어가는 대표 주자급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곳들이다.

설문조사의 발단은 소문이었다. 최근 한국 음식업계에선 “조만간 ‘미슐랭 가이드 상하이·서울 편’이 발간될 것이고, 이를 위해 미슐랭 심사원들이 식당 평가 ‘암행’에 나섰다”는 풍문이 돌았다.

이에 맞춰 서울 특급호텔과 유명 레스토랑들이 자존심을 건 ‘미슐랭 별 따기’ 전쟁에 나섰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상당수 레스토랑이 신메뉴 개발과 인테리어 공사, 테이블 장식과 식기 교체, 서비스 보강 등을 시작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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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롯데호텔서울 피에르가니에르의 와인 소스를 곁들인 한우 안심 구이. 지난해 가니에르 셰프가 방한해 갈라 디너에서 직접 선보인 메뉴다.

여기서 미슐랭 가이드란 식당을 평가하는 ‘레드 가이드’를 말한다. 권위 있는 미식가들이 레스토랑 음식 맛과 서비스, 가격, 분위기 등을 평가해 별점을 부여한 책이다.

별점 등급 ‘미슐랭 스타’는 1개(★)부터 3개(★★★)까지 준다.

여행·관광 안내서인 ‘그린 가이드’는 2011년 한국 편이 이미 나왔다.

미슐랭 레드가이드의 일본 도쿄 편이 2007년, 홍콩·마카오 편이 2009년 각각 나온 상황에서 인구 1000만 도시 서울이 미슐랭 가이드에 나온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이에 따라 본지는 세계 각지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수련 경험 등을 한 셰프들과 각 호텔 총주방장·지배인, 그리고 각국 음식문화를 다양하게 경험한 전문가·기자 등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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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호텔신라서울의 한식 레스토랑 라연의 신선로. 1++ 등급의 한우 양지로 맑고 깊은 맛을 낸 육수에 각종 채소와 고기를 넣어 끓였다.

기준은 철저히 미슐랭에 맞췄다.

본인이 좋아하거나 자주 가는 식당이 아니라 ‘서울에 미슐랭 심사원이 와서 평가한다면 별을 딸 확률이 높은 레스토랑이 어디인지’에 답해 달라고 요청했다.

총 62명이 설문에 응해 1위로 정식당을 꼽았다.

임정식 셰프가 2009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뉴코리안’이라는 콘셉트로 한식 코스 요리를 선보인 곳이다. 임 셰프는 2011년 미국 뉴욕에 ‘정식’(JUNGSIK)이라는 한식 레스토랑을 열어 2014년판부터 미슐랭 2스타를 유지하고 있다.

“음식의 격과 서비스로 이미 많은 랭킹에 등재된 레스토랑”(정혜원 프랑스관광청 부소장), “뉴코리안의 선두주자이면서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한식과 양식을 자유롭게 풀어낸다”(이재훈 ‘팔레 드 고몽’ 셰프) 등의 평가를 받았다.

대신 “뉴욕점의 음식과 어떻게 차별화할지가 관건”(박상규 ‘윤가 긴자’ 헤드셰프)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2위 ‘밍글스’는 비교적 신생 레스토랑(2014년 5월 오픈)임에도 예약이 1개월씩 밀려 있는 요즘 가장 ‘핫’한 곳이다.

미국 모던 아시안 레스토랑 ‘노부(NOBU)’의 바하마 지점에서 최연소 총주방장을 지낸 강민구 셰프가 전통 장(醬)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아시안 코스 요리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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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레스쁘아 뒤 이부의 ‘트뤼플 퓌레와 푸아그라를 넣어 브레이즈한 갈비살’. 갈비살을 펼쳐 푸아그라·버섯·햄 등을 넣고 말아서 브레이즈(일종의 찜)한 요리다.

양고기 숯불구이, 무명자연밥상 등 새롭게 해석된 한식으로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이 먹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섬세한 맛”(임석 SPC컬리너리 아카데미 르노뜨르 요리 책임강사)이라는 평가다.

성별 분류로 했을 때 여성 설문 대상자들은 밍글스를 1위로, 정식당을 2위로 꼽았다.

3위 피에르가니에르(롯데호텔 서울)는 2001~2008년 8년 연속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세계적인 스타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의 이름을 딴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가니에르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연 레스토랑은 파리·도쿄·홍콩에 이어 서울이 네 번째다.

롯데호텔은 이를 위해 70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유수 레스토랑과 비교해도 장비·시설이 완벽하고 파리의 미슐랭 DNA도 지녔다”(김대천 ‘톡톡’ 셰프)는 평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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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팔레 드 고몽의 ‘포르치니 버섯으로 속을 채운 치킨 무스’. 전채 요리 중 하나로 바삭한 닭껍질과 안초비 크림 등을 곁들였다.

이렇듯 ‘미슐랭 서울 편’ 예측 조사에서 10위권 식당들의 키워드는 모던 한식(뉴코리안), 프렌치, 미슐랭 유경험(혹은 해외 인지도) 등 세 가지로 좁혀졌다.

미슐랭 경험이 있는 ‘정식당’은 물론 4위 라연과 9위 류니끄는 지난해 영국 레스토랑 전문지 ‘레스토랑’이 선정한 ‘2015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나란히 들었던 바 있다.

이미 해외에서 호평을 받은 레스토랑들이 미슐랭 가이드에서도 저력을 보일 것이란 예측이다.

눈에 띄는 것은 ‘프렌치’다.

한국인이 양식당 가운데 상대적으로 즐겨 찾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전멸’이나 마찬가지인 반면 프렌치는 피에르가니에르, 레스쁘아 뒤 이부, 팔레 드 고몽, 류니끄 등 4곳이 10위권에 올랐다.

이는 식당의 완성도뿐 아니라 미슐랭 가이드가 프랑스에서 비롯됐음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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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호텔신라서울의 중식당 팔선이 내세우는 불도장. 중국 최고급 요리 중 하나인 불도장은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보양식이다.

실제 2009년 ‘홍콩·마카오 미슐랭 가이드’가 나온 이래 2014년까지 유일한 마카오의 3스타 레스토랑은 프렌치 레스토랑 ‘로부숑 오 돔’이었다.

달리 말하면 서울에서 수준 이상의 프렌치 요리를 구사하면 이탈리안이나 중식·일식보다 미슐랭 별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모던 한식이 아닌 정통 한식이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 모던 한식이란 한국 고유의 음식이나 식재료, 먹는 방식을 첨단 요리 테크닉 혹은 해외 트렌드와 접목해 재해석한 음식을 말한다. 상대적으로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라연(4위)이나 가온(10위)보다 ‘퓨전 한식’에 가까운 정식당·밍글스가 상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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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웨스틴조선서울의 일식당 스시조의 스시 요리. 일본의 장인이 350년 된 편백나무를 15년간 자연 건조시켜 만든 접시에 스시를 제공한다.

20위권으로 넓혀도 모던 한식이 8곳(10위권 4곳+권숙수·비채나·콩두·품서울) 오른 반면 정통은 평양냉면과 불고기의 명가인 우래옥 한 곳에 불과했다. 세계인의 입맛을 겨냥하기엔 정통보다 퓨전화된 한식이 알맞다고 본 듯하다.

다만 실제로 이런 ‘퓨전 한식’이 미슐랭 별을 딸 경우 “이 메뉴가 한국의 정통 음식으로 비춰질 수 있고, 전통과 역사가 부족한 레스토랑도 약점”(라채일 리츠칼튼 조리부 수석팀장)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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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프렌치 식당 류니끄의 메인 요리 ‘메추라기 추억’. 메추라기 가슴살 구이를 건초 향과 함께 즐길 수 있다. 붉은 비트로 강렬함을 살렸다.

전문가들은 미슐랭 서울 편을 기대하면서도 우려도 함께 내비쳤다.

“개별적인 ‘별 따기 경쟁’으로 여겨 과열경쟁·상업적 악이용으로 몰고 간다면 그 별은 금방 빛을 잃고 회의론이 늘 것”(G레스토랑 관계자), “‘미슐랭 레스토랑’이 요하는 품격 있는 외식문화의 본질보다 외형적 별 숫자에 급급한 맹목적인 추종을 경계해야 한다”(마카오관광청 장유리 차장)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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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가온의 ‘5가지 자연의 맛 식전 주전부리’. 양념이나 향신료 없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광주요 그릇에 정갈하게 담아냈다.

박영식 SG다인힐 부사장은 “미슐랭 레스토랑 문화 자체가 ‘상당한 투자자금, 셰프의 경력 및 창의성, 고객의 요리에 대한 이해’ 등 3박자가 맞물려야 가능하다”며 “미슐랭 가이드 자체보다 한국 외식문화를 성숙시키는 데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블로그 형태의 디지털 기사로도 작성됐습니다. 기사를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블로그형 기사] 여기가 한국의 '미슐랭'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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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팀=강혜란·송정·김선미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재선 기자, [중앙포토], 각 업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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