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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퀸 신발장엔 하이힐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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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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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여자펜싱 사상 첫 금메달을 땄던 김지연. 빼어난 외모까지 갖춰 미녀 검객으로 불리는 그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영광의 재현을 꿈꾸고 있다. [강정현 기자],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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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 결승 당시 김지연의 경기 모습. ‘발발이’란 별명답게 빠른 발로 상대를 제압했다. [강정현 기자], [중앙포토]

‘미녀 검객’. 2012년 런던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금메달리스트 김지연(28·익산시청)의 별명이다. 한국 여자펜싱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던 김지연은 화려한 칼 솜씨만큼 빼어난 외모로 큰 인기를 끌었다. 김지연은 패션 잡지의 화보를 촬영하면서 화려한 헤어스타일과 스커트 패션까지 뽐냈다. 화사한 미모와 검객의 이미지가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를 듣는다.

리우 앞으로 ② 펜싱 김지연
런던 금메달 딴 뒤 찾아온 골반 통증
외출할 때도 하이힐 대신 운동화만
심리 치료 함께하며 자신감 높여
‘내가 제일 잘났다’ 주문 외워요

 런던 올림픽 이후 4년이 흘렀지만 김지연은 변함 없이 피스트(펜싱경기대)에 서있다. 그는 2016 리우 올림픽에서 또 한번 금메달에 도전한다. 최근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김지연은 운동화를 신고,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있었다. 김지연은 “4년 전의 일은 잊었다. 나는 다시 도전자 입장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베기와 찌르기로 상체 전 부분을 공격하는 사브르 선수다. 종목 특성상 과격한 동작이 많아 부상이 끊이지 않는다. 이로 인해 지난해 러시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에서 19위에 그쳤다. 현재 그는 국제펜싱연맹(FIE) 세계랭킹 8위까지 떨어졌다.

 김지연은 “지난해 2월부터 왼쪽 고관절 통증이 심했다.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의사가 펜싱을 더 이상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며 “2012년 몸 상태가 100%였다면 지금은 40%다. 부상 악화를 막기 위해 요즘은 외출할 때도 하이힐 대신 운동화만 신는다”고 털어놓았다.

 김지연이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건 대표팀에 발탁된지 딱 1년 만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독했고, 패기가 넘쳤다. 4년 전 김지연으로 돌아가는 게 그의 목표다. 김지연은 “지난해 각종 대회에선 골반에 진통제 주사를 맞고 경기에 나섰다. 새벽·오전·오후·야간 등 하루 네 차례 훈련을 하면서 몸을 만드는 중”이라고 말했다.

 강의수 펜싱대표팀 트레이너는 “김지연은 연골이 닳았는데도 개인운동을 따로 할 만큼 근성이 뛰어나다”고 귀띔했다. 김미정 펜싱대표팀 전력분석관은 “지연이는 대회가 끝나면 가장 먼저 찾아와 경기 영상을 보면서 장단점을 분석한다. 여전히 가장 부지런한 선수”라고 전했다.

 김지연은 중학교 때 플뢰레 선수로 펜싱에 입문했다. 하지만 머리와 양팔을 제외하고 몸통만 찌를 수 있는 플뢰레는 김지연의 스타일과 맞지 않았다. 김지연은 “성격이 급해서 플뢰레를 할 땐 역전패를 자주 당했다. 고1 때 사브르로 전향했는데 나와 잘 맞았다”고 말했다. 단아한 외모와 달리 피스트 위에선 빠르고 저돌적인 그는 사브르 종목에서 승승장구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마지막 아홉번째 주자로 나서 한국의 금메달을 이끌었다.

 어느새 대표팀 맏언니가 된 김지연은 펜싱 스타일에 변화를 줬다. 서성준 대표팀 코치는 “야구 국민타자 이승엽(39·삼성)도 나이를 먹으면서 타격폼을 바꿨다고 들었다. 화끈한 경기로 올림픽 금메달을 땄던 지연이는 이제 수비도 중시하는 노련한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발이 굉장히 빨라 ‘발발이’라 불리는 김지현은 최근 심플한 공격을 추구하며 수비를 강화하고 있다.

 펜싱 대표팀은 최근 현대무용을 접목시킨 이색훈련을 시작했다. 서 코치는 “현대무용은 창의적이고 변화무쌍하다. 펜싱에도 변칙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심플하면서도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리우올림픽까지 가는 길은 그리 순탄치 않다. 현재 한국 여자 사브르 단체전 세계랭킹은 6위다. 오는 3월까지 세계대회 누적포인트를 합산해 8위 안에 들 경우 해당국 상위랭커 3명이 올림픽에 나선다. 김지연의 올림픽 출전 가능성은 80% 이상이지만 마냥 낙관할 순 없다.

 서 코치는 “펜싱은 기록 경기가 아니다. 당일 컨디션과 상대선수, 심판판정 등의 변수가 많다. 올림픽 16강 토너먼트부터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며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펜싱이 금메달 2개를 따냈다. 그러나 펜싱 강국이 많은 유럽에서는 한국의 선전을 일시적 현상으로 봤다. 지연이가 그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1위 소피아 벨리카야(러시아)와 2위 올가 카를란(우크라이나)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선수도 여전히 김지연이다. 최근 부진하지만 빠르고 저돌적인 ‘미녀 검객’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김지연은 “최근 자신감을 높이기 위해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2012년처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주문을 외운다. 올림픽 이후 정상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컸던 게 사실이다. 2012년처럼 펜싱을 즐기려 한다”고 말했다.

 김지연은 2012년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로또를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승부 근성에 행운이 따른 결과였다. 이제 김지연은 피나는 노력으로 한국 펜싱 최초의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한다. 김지연의 소셜 미디어 문패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 “서두르지 말되, 멈추지 말라. 지금은 늦지만 언젠가 빛날 거야.”

글=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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