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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100만 명 죽게 하는 모기 씨 말릴 방법 개발했지만 고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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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호 25면

1 말라리아 모기. 열대·아열대 여행 시에는 모기에 주의해야 한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뜻한 먼 남쪽 섬 나라가 그립다. 휴가로 동남아· 남태평양, 멀리는 아프리카까지도 계획한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올 하반기 브라질에 머리가 작은 ‘소두(小頭)증’ 신생아가 평상시의 17배나 증가했다. 기겁한 보건당국의 조사 결과, 아프리카에서 이동한 말라리아 모기가 옮기는 ‘지카(Zika)’ 바이러스 감염으로 밝혀졌고 의료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브라질만의 문제가 아니다. 열대·아열대 국가를 여행할 때는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모기다. 말라리아·황열·뎅기열·지카·치쿤쿠니아 등 이름도 생소한 병으로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죽는다. 최근 이놈들을 아예 근절시킬 가공할 기술이 나왔다. 과연 박멸할 수 있을까.

2 혈액 속의 적혈구와 말라리아 원충(플라스모디움, 사진 중앙 짙은 색).

뇌에도 침입하는 말라리아 원충베트남 호치민 공항에 내리면 ‘훅-’하는 더위가 한국의 겨울을 잊게 한다. 이곳에서 4시간 남쪽으로 향하면 메콩 델타 지역이 있다. 수로로 이어진 농촌을 깊숙이 들어가면 사람들이 구석구석 살고 있다. 사방천지가 물이다. 고여 있는 물에 오리도 키운다. 이런 곳에 민박이라도 하려면 모기와의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베트남 농촌은 말라리아 위험지역이다. 1965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병사들은 베트콩과의 싸움보다도 코앞의 모기가 더 급했다. 끈끈하고 냄새 나는 모기 기피제가 지급됐지만 밀림에서 달려드는 모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부대 전체가 말라리아로 전투력을 상실한 곳도 많다. 미 신경정신병 학회지에 의하면 당시 한 해만 7832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했다.

말라리아 발생지역과 발생 빈도(1000명 당) [자료 세계보건기구(WHO, 2013)]

지미 매뉴얼도 참전용사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19세에 자원했고 몇 년 후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매일 밤 악몽과 심한 열병에 시달렸다.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를 앓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고 의사도 그런 약을 처방했다. 어느 날 병원 게시판에서 ‘말라리아’란 글자를 보고 본인이 베트남에서 말라리아를 두 번씩이나 앓았었음을 상기했다. 검사결과 그는 뇌의 혈관이 말라리아 원충으로 막히는 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말라리아 환자였던 참전용사의 70%가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말라리아는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심한 후유증을 남긴다.


말라리아는 모기가 옮기는 병으로 주범은 ‘플라스모디움’ 원충이다.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이 원충은 모기의 흡혈을 통해서 모기 체내로 침입한다. 모기도 외부 침입자인 원충을 퇴치하려 하지만 많은 놈이 살아남는다. 원충에 감염된 모기가 사람을 물면 사람의 적혈구 속에 들어가서 증식하고 인체의 면역공격을 피한다. 12일의 잠복기가 지나면 두통·근육통·무기력함·복부 불편감이 생기고 그 후 40도가 넘는 고열로 몸이 펄펄 끓는다. 뇌 침입 시 뇌혈관 자체를 막아서 뇌졸중·정신병·환각증을 일으킨다. 모기가 옮기는 병은 말라리아 원충만이 아니다. 황열·뎅기열·지카는 모두 모기 내의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병으로 말라리아처럼 발한·고열이 난다.


노벨상 받은 투유유, 말라리아 약 개발우리나라에도 말라리아, 즉 학질이 있다. 하지만 연간 400명 정도만 감염이 되고 그 정도도 약해서 ‘학질 떼듯’ 앓고 나면 큰 일이 없다. 반면 열대지방의 말라리아는 독하고 위험하다. 아프리카, 남미 중심부, 동남아 일부, 남태평양제도가 위험지역이다.<지도참조> 말라리아는 아직 백신은 없고 예방약이 있다. 위험지역을 여행하려면 최소 2주 전에 복용해야한다. 잠복기가 12일이니 위험지역을 벗어났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황열은 대응방법이 다르다. 따라서 각자의 여행지역에 맞는 주사와 예방약을 미리 확인하고 미리 맞아야 한다. 혹시 있을 약의 부작용 때문에 안 먹는다면 안전벨트가 답답하다고 안 하는 것과 같다. 주사·예방약보다 더 중요한 건 모기에게 안 물리는 것이다. 피부 노출을 최대한 막고 기피제·모기장을 사용하고, 가능하면 에어컨이 있는 숙소를 택해야 한다.


베트남 여행 중 구찌터널을 간 적이 있다. 그 길이가 250㎞이나 되니 미군이 두 손들만도 하다. 하지만 이런 땅굴에서도 두려운 것은 역시 미군 폭격이 아니라 모기였나 보다. 당시 중국은 북베트남을 적극 지원해서 극비프로젝트 ‘523’을 추진했다. 말라리아 약을 만드는 것이다. 그 팀에 중국 여성 과학자가 한 사람 있었다. 올해 85세가 된 투유유 박사는 지난 10월 중국 최초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항말라리아 물질 (아르테미신)을 ‘개똥쑥’에서 찾았다. 냄새가 개똥 같은 이 식물로 만든 약은 오랫동안 쓰였던 ‘키니네’보다 효능이 뛰어나서 개발 후 10년 동안 10억 명의 사람들이 이 약으로 치료를 받았다. 마오쩌둥이 전쟁을 이기려고 극비에 시작한 프로젝트가 거꾸로 10억의 생명을 건진 아이러니가 되었다.


빌 게이트는 “살아있는 동안 말라리아 등 후진국의 감염병을 퇴치하고 싶다”고 했다. 작년 한 해만도 5000억 원을 기부했다. 30년간 지속된 말라리아 연구는 이제 그 칼끝을 모기에게 겨누기 시작했다. 치료 대신 예방, 즉 모기가 질병을 옮기지 못하게 하는 방향으로 급선회중이다. 견문발검(見蚊拔劍), 즉 모기보고 인간이 칼을 빼들었다. 진검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모기 유전자 변형은 가공할 박멸기술작년 브라질 정부는 유전자변형(GM)불임(不姙) 모기의 야외 실험을 허가했다. 영국 ‘옥시텍’회사에서 개발한 이 ‘GM 내시모기’는 이미 두 번의 현장실험에서 모기를 85%나 감소시켰다. 기형아가 발생하는 비상사태가 발생되자 브라질 정부는 GM 내시모기를 현장 투입할 예정이다. GM 내시모기보다 논란이 덜 한 방법도 개발되었다. 호주 연구팀은 말라리아 모기와 그 안의 원충을 못 자라게 하는 박테리아를 다른 곤충에서 찾아냈다. 이 박테리아를 감염시킨 모기가 말라리아 예방에는 효과가 있었다.


모기 박멸 노력은 인간 역사와 같이한다. 파나마 운하공사의 가장 큰 난관은 원인을 모르는 풍토병이었다. 수에즈운하 건설에 성공한 프랑스가 1876년 자신만만하게 건설을 시도했지만 죽어나가는 인부들로 시작도 못해보고 두 손 들었다. 미국이 뛰어들었다. 하지만 인부의 85%가 병원 신세를 지게 되자 운하공사는 중단위기에 놓였다. 의무 책임자인 윌리엄 고거스 대령은 풍토병의 원인이 ‘모기’라고 직감하고 사방 30㎞의 늪과 밀림을 제거했다. 1년간 4000명의 사람들이 60만 갤런의 기름으로 모기 박멸을 한 덕분에 파나마 운하는 개통했다. 하지만 이 서식지 제거 방법을 아프리카 적도 부근의 넓은 지역에 모두 적용할 수는 없다. 유일한 방법은 말라리아 원충을 지구상에서 없애는 것이다.


미 캘리포니아 대학연구팀은 말라리아 원충을 무력화시키는 ‘GM 항체모기’를 만들었다. 이 ‘GM 항체모기’는 모기는 놔두고 말라리아 원충에만 항체가 달라붙어 죽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방법 (GM 내시 모기, 박테리아 감염모기, GM 항체모기)의 가장 큰 약점은 야외에서 퍼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즉 야생에 GM 모기를 방사, 번식해 모두 GM 모기로 바뀌려면 시간이 걸린다. 가장 좋은 방법은 투입한 GM 모기가 산불처럼 스스로 퍼지게 해야 한다. 과학자들이 머리를 모았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와 인간의 전쟁.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삽화 박정주]

아프리카 어린이, 30초마다 말라리아로 사망2015년 11월 저명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러지’에 놀랄만한 사실이 발표됐다. 말라리아를 박멸시킬 방법을 찾은 것이다. ‘유전자 드라이브(Gene Drive)’라 불리는 방법이다. 즉 말라리아를 억제하는 ‘항체’ 유전자와 이 유전자를 ‘짝’의 유전자에 옮기는 ‘전파유전자’를 동시에 갖춘 GM 모기를 만들었다. 그 결과 암놈과 수놈의 ‘짝’ 사이에서 태어나는 자식 모기는 ‘전파유전자’의 힘으로 정상 유전자도 항체유전자를 가지게 된다. 결국 연쇄반응처럼 모든 자식 모기는 항체유전자를 가지고 되고, 따라서 말라리아 원충이 못 살게 된다. 전파유전자의 작동 원리는 ‘유전자가위(CRISPR/cas9)’로서 ‘짝’의 유전자의 정확한 위치에 말라리아 항체 유전자를 복사해서 삽입한다.


이 방법은 상당한 파괴력과 파급력을 가진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이집트 숲 모기’전체가 모두 새로운 항체유전자를 가지게 된다. 한 종(種)이 순식간에 변한다는 이야기다. 멘델의 유전법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만약 말라리아 항체유전자가 아니고 ‘내시’유전자를 사용한다면 씨를 말릴 수 있다. 한 종을 멸종시킬 수 있다. 모기 뿐만이 아니다. 다른 곤충도 같은 방식으로 멸종시킬 수 있다. 지금까지의 어떤 방법보다도 파괴적이고 생태계 영향이 클 것이다. 그러나 3500종의 모기 중 말라리아 모기 1종만을 제거한다면 환경생태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그룹도 있다. 하지만 아직 누구도 모른다. 살 곳이 없어진 말라리아 원충이 다른 모기와 협약을 맺어서 새 주인에게로 이사할 지도 모른다.


브라질에서 시행중인 모기 박멸 야외 실험의 진행결과가 궁금하다. 설사 성공적이라 해도 동남아나 아프리카로 가는 여행자의 복장이 금방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긴 소매, 긴 바지를 반드시 챙기자. 모기장이 없는 시골이라면 반드시 모기약을 챙겨야 한다. 물론 예방약도 잊지 말자. 30초에 한 명씩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어른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하지만 만만치는 않다. 왜냐면 모기는 수억 년을 살아왔던 생존의 고수이기 때문이다. 최근 20년간 세계적으로 뎅기열 환자는 5배나 늘었다. 모기의 박멸보다는 왜 그들이 점점 아열대로 퍼져나가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원인이 지구온난화에 있다는 과학자의 경고에 귀 기울어야 한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ekkim@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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