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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변수에 존엄사법 제동, 정부 “18년간 침묵하더니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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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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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연명의료 중단 입법이 한의사 참여 문제로 발목이 잡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해 12월 30일 전체회의를 열고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을 심의했지만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보류시켰다.

97년 보라매병원 사건 후 공론화
국민 70~80%와 노인 90% 찬성
국회 본회의 통과 코앞에 두고
법사위서 “침술도 포함” 주장 나와
19대 국회 처리 못할 가능성 커져

이 법안은 임종 단계에 접어든 환자에게 연명의료 행위를 중단해도 의사나 가족이 처벌받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해 법사위로 넘어갔다. 하지만 논의가 보류되면서 19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연명의료 중단은 1997년 말기 환자 퇴원을 허용한 서울 보라매병원 의사가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은 이후 18년 동안 뜨거운 논쟁 대상이 돼 왔다. 2013년 7월 사회적 합의기구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중단 가능한 연명의료 행위를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 투여 등 네 가지로 합의하고 법제화를 권고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국민의 70~80%가, 노인의 90% 이상이 연명의료 중단을 지지한다.

 법사위 회의에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한의사가 연명의료 중단 결정에 참여해야 하고, 연명의료 행위에 한의학 시술(김 의원은 침술을 예로 제시)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 연명의료 개념을 확 줄여놓고 한의사는 거기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면 시행 과정에서 상당한 혼란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김태호 한의사협회 이사는 “말기 환자나 임종 직전 환자의 선택권을 넓히려면 한의사도 연명의료 중단이나 말기 환자 판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심폐소생술도 119구급대가 하는데 한의사라고 못할 이유가 있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심폐소생술 등 네 가지 행위는 특수연명치료인데 이는 (현행 의료법상) 한의사는 할 수 없게 돼 있으며 일반 연명의료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 연명의료는 영양·물 공급, 통증 완화 등을 말하는 것으로 법에서 의사·한의사 구분 없이 허용한다는 뜻이다.

 법사위 심태규 전문위원도 “(이 법안은) 연명의료 행위와 연명의료 중단에 대해 의사들이 하는 결정으로 한정하고 있다”며 “심폐소생술과 항암제 투여 등 연명의료 행위는 의사만 할 수 있고 한의사는 할 수 없는 처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18년 동안 수많은 공청회와 토론회를 열고 각계 입장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한의사들이 단 한 번도 의견을 내지 않다가 법안 통과를 눈앞에 둔 상태에서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제 와서 연명의료 행위자를 바꿀 경우 18년 논의가 물거품이 되면서 몇 년간 또다시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는 “연명의료는 한의사들이 담당하지 않는 중환자 의학의 핵심 분야로 서양의학이 바탕이 된 것이기 때문에 연명의료 중단에 한의사가 간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이번에는 현행 법안대로 통과시키고 한의사 포함 여부는 상황을 봐서 추후에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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