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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지막 열린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할머니들 울분 토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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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무책임한 협상은 우리를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입니다. 283명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88) 할머니는 30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울분을 토했다. 24년간 1211회를 이어온 정기 수요집회 자리에서였다. 올해 마지막으로 열린 이 자리에서 이 할머니는 지난 28일 타결된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뻔뻔한 거짓 합의’라고 평가했다. 또 한일외교장관 회담과 관련 외교부로부터 사전에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외교부는 ‘공휴일’이 연이어 있어 미리 공지하지 못했다는 어처구니없는 핑계를 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수요집회엔 이용수, 길원옥(87)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각계 시민단체, 일반 시민 등 1000여명(경찰 추산 700명)이 참석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정대협 모두 한일 양국 간 협상으로 지난주 1210회 수요집회가 마지막이길 바랐지만 오히려 합의 이후 불만은 더욱 거세졌다. 이 할머니는 “내 나이가 올해로 88세가 되는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기 좋은 나이”라며 위안부 합의를 무효화하기 위해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24년간 수요집회를 이끌어 온 정대협도 성명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진정 어린 사죄도 없고, 법적인 배상책임 이행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도 없는 굴욕적 결과”라며 향후 수요집회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이번 수요집회는 올해 세상을 떠난 9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추모제 형식으로 진행됐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촛불 점등식과 함께 집회가 시작됐고, 대금연주가 한충은 씨의 추모연주가 울려 퍼지는 동안 300여명의 학생들은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영정 사진을 일본대사관 방향으로 들어올렸다. 이화여자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이정은(17) 양은 “우리들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할머니들의 뜻에 동참하고자 한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을 통해 드러난 아픈 진실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현재 여성가족부에 공식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38명으로, 이 중 생존자는 46명에 불과하다. 모두 80세가 넘은 고령에 점차 건강이 악화되고 있어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올해 들어서만 피해자 9명이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29일 정대협 쉼터를 찾은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 또한 “(할머니들이) 더 돌아가시기 전에, 시간이 더 가기 전에 어떻게든 결말을 지으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정부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지금처럼 굴욕적인 타결안을 가져왔다”며 “시간이 없다는 걸 알면 최소한 할머니들이 ‘최선을 다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합의를 이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대협은 이 날 수요집회를 기점으로 향후 국내 시민단체 및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매주 수요일 전국 29곳에 건립돼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가 릴레이 수요집회를 열고, 미국·유럽·아시아 지역의 활동가들과 함께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체를 구성할 계획이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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