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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부재, 리더십 실종에 투자적기 놓쳐 ‘퇴보’는 시간 문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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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호 7 면

인천국제공항은 올해 다섯 가지 신기록을 세웠다. 공항을 이용한 여객 수가 4922만 명(12월 말 예상치)으로 2001년 개항 이래 최대치다. 이달 25일에는 개항 이래 처음으로 연간 운항 30만 회를 넘어섰고, 무사고 누적 운항 기록도 300만 회를 달성했다. 인천공항을 운영하는 인천공항공사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약 6700억원의 흑자를 낼 전망이며, 국제공항협의회(ACI)가 주관하는 세계 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는 10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메르스 여파로 올해 6~7월 여객이 전년 대비 약 10%(77만 명) 감소했음을 감안할 때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화려한 신기록에도 불구하고 인천공항의 잔치는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공항 안팎에서 잇따른다. 장기 비전 부재에 리더십 실종이 겹치면서 경쟁력이 나날이 저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 환승률, 세계 10대 공항 중 최저가장 큰 문제는 환승률 감소다. 인천공항을 거쳐 다른 나라로 가는 이용객 비중인 환승률은 ‘허브공항’을 나타내는 실질 지표다. 허브공항은 승객과 화물이 모였다가 다시 인근 지역으로 가는 중계지 역할을 하는 중심공항이다. 수익 성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많은 나라가 허브공항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동북아 지역에서는 한·중·일이 이 지역 허브공항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올해 인천공항의 환승률은 11월 말 기준으로 15.2%에 그쳤다. 2013년 18.7%에서 2014년 16%로 내려가더니 올해는 더 떨어진 것이다. 세계 10대 공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통상 환승률이 20% 이상이어야 허브공항으로 인정된다.


 새누리당 김희국 의원이 공개한 ‘인천공항 외 7대 경쟁 국제공항 환승률 현황’을 보면 인천공항의 환승률은 2010년 15.7%에서 2014년 16%로 0.3%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일본 나리타공항은 같은 기간 6.9%포인트, 베이징·상하이 공항도 각각 5.2%포인트, 3.9%포인트 성장했다. 김희국 의원은 “인천공항이 허브공항을 목표로 한다는 명분에 따라 국제선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환승률 저하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유럽·미국·일본 등의 경우 대형 공항이 많아 이용객과 화물이 분산되는 반면 한국은 70% 이상이 인천공항에 몰린다.


 공항 전문가들은 인천공항의 환승률 저하는 당연한 결과라고 말한다. 우선 적절한 시설 확장 시점을 놓쳐 주요 시설들이 한계에 다다랐다. 익명을 요청한 인천공항 관계자는 “터미널만 보더라도 수용 한계인 4400만 명은 이미 지난해 넘어섰다”며 “시설에 여유가 있어야 일본·중국에서 인천공항을 거쳐 미주·유럽으로 갈 승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텐데 비수기에도 공항이 크게 붐빌 정도로 사람이 넘치니 환승객까지 챙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천공항의 환적화물 감소세도 두드러진다. 인천공항의 환적률은 2007년 50.1%로 정점을 찍은 뒤 줄곧 감소세다. 화물 운송량은 2007년 128만t에서 2014년 103만t으로 떨어졌다. 세계 경기 침체로 전반적인 화물 물동량이 줄어든 여파도 있지만 외국 유통업체들이 인천공항을 이용해 화물을 처리하는 빈도 역시 감소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인천공항이 주춤하고 있는 사이 경쟁 공항들은 날아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가 동북아의 허브공항을 목표로 공항 건설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호주의 항공 컨설팅 전문회사인 아시아·태평양 항공센터(CAPA) 자료에 따르면 현재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진행 중인 각종 공항 공사에 투자되는 금액은 총 2268억 달러(약 265조원)다.


중국, 베이징 근교에 제2 공항 건설 중 가장 적극적인 곳이 중국이다. 중국의 항공 시장은 현재 세계 2위이고 2030년에는 미국을 앞서 세계 최대 항공 시장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베이징 도심에서 남쪽으로 46㎞ 떨어진 곳에 베이징 제2공항을 건설 중이다. 2025년 최종 완공되면 활주로 7개에 연간 1억3000만 명의 여객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또 상하이 푸둥공항은 올 3월 세계 최대 에어버스 A380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제4활주로를 완공한 데 이어 제5활주로를 건설하고 있다. 홍콩도 2023년까지 북측 활주로 인근의 바다를 메워 제3활주로 등을 건설할 계획이다. 연간 여객 1억 명, 62만 회의 항공기를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공항을 만들 계획이다. 제3활주로 건설에 투자하는 금액만 193억 달러다.


 일본은 2020년 도쿄 여름 올림픽을 대비해 항공 교통망 확충에 한창이다. 도쿄 나리타공항은 올 4월 750만 명을 수용하는 저비용항공사(LCC) 전용 터미널을 완공했고, 오사카 간사이공항도 두 번째 LCC 터미널을 내년 3월 완공할 계획이다. 싱가포르의 창이공항은 연간 여객 1억3000만 명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중장기 마스터플랜으로 추진하고 있고,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공항도 2020년까지 연간 여객 1억10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게 시설을 확장하고 있다. 이 공항은 이미 지난해 LCC 전용 터미널로는 세계 최대 규모(수용능력 4500만 명)인 KLIA2를 개장했다. 아태 지역에서 공항 투자 붐이 부는 것은 이 지역 항공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아태 지역의 항공기 이용 여객 수가 2014년 11억 명에서 2030년에는 29억 명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경쟁국들과 비교할 때 인천공항의 확장 및 투자 계획은 규모면에서 밀리고 적정 투자 시점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공항공사는 제2여객터미널과 항공기가 머무는 계류장, 교통시설 등 공항 인프라를 확장하는 3단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09년 6월 시작한 3단계 사업을 2018년 평창올림픽 개최 전인 2017년 12월에 마칠 계획이다. 3단계 사업이 완료되면 연간 6200만 명의 여객을 수용할 수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3단계 사업에 모두 4조9303억원을 투입한다. 하지만 3단계가 완료돼도 1억 명 이상을 수용하는 경쟁 공항에 비해 규모면에서부터 밀리게 된다.


 이렇게 적시에, 적정 규모로 투자를 못한 건 제대로 된 리더십과 구체적인 비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인천공항공사를 2009년까지 민영화하고, 주식시장에 상장해 조달한 자금으로 대대적인 시설 투자에 나설 계획이었다. 사실 인천공항은 개항 전부터 법으로 민영화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헐값 매각’ ‘국부 유출’ ‘사용료 인상’ ‘서비스 저하’ 등의 우려가 제기됐고 정부가 4대 강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인천공항을 매각하려 한다는 의혹까지 일면서 민영화 계획은 차질을 빚었다.


 민영화가 지연되면서 인천공항의 투자 계획은 크게 위축됐다. 3단계 사업비 4조9303억원 중 자체 조달은 2조2000억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2조7000억원은 외부차입으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4년 말 기준 인천 공항의 부채비율은 36.8%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3단계 공항 건설 사업으로 부채비율이 급증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인천공항은 3단계 건설을 제외한 투자사업에 대해서는 30% 이상의 사업을 폐지·축소하거나 시기를 늦추기로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상희 의원은 “정부 보조 없이 인천공항 자체 조달 자금만으로 투자를 진행하려다 보니 투자가 소극적이고 발걸음도 더딘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도 배당을 통해 인천공항의 이익을 곶감 빼먹듯 챙기고 있다. 2009년 269억원으로 시작해 올해 1980억원까지 7년간 총 6793억원을 배당수익으로 챙겼다. 또 내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5587억원의 배당금을 더 가져갈 계획이다.


정치인 출신 사장들이 위기 초래 지적도 인천공항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가장 큰 원인은 리더십 부재다. 인천공항은 현재 ‘사장 직무 대행’이 업무를 처리한다. 박완수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6대, 2014년 10월~2015년 12월)은 이달 19일 임기 1년10개월을 앞두고 내년 4·13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했다. 박 사장은 두 차례 창원시장을 지낸 지방공무원 출신으로 공항 업무에는 문외한이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친박계 지원을 받아 새누리당 경남도지사 경선에 나갔다가 패한 뒤 인천공항 사장에 임명됐다. 당시 수십 명의 공모자 가운데 인천공항 임원과 민간 항공사 사장 등이 포함돼 있었지만 기업 경영 경험이 전무한 박 사장에게 밀렸다. 무성한 낙하산 비판 속에서 취임한 박 사장은 취임 후 하루가 멀다 하고 지역구를 찾더니 총선에 대비해 집 주소도 진작에 옮겼다.


 박 사장 취임 전에도 인천공항은 7개월간 ‘사장 직무 대행’ 체제였다. 박 사장의 전임인 정창수 사장(5대, 2013년 6월~2014년 3월)도 취임 8개월 만인 지난해 2월 강원지사 선거에 출마한다며 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사장이 공석인 사이 사장 대행을 맡았던 부사장은 특정 업체가 사업을 낙찰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고 사업자로부터 리스 차량과 향응을 제공받았다가 감사에 적발돼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 기간 중 면세점·은행·식음료 매장 등 시설에 대한 입찰이 최대 9개월간 지연되기도 했다.


 94년부터 신공항건설공단 이사장으로 직접 인천공항의 초석을 닦은 강동석 초대 사장이나 2008년부터 4년여 동안 인천공항을 맡아 공기업 체질을 개혁했다는 평을 듣는 이채욱 4대 사장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익명을 요청한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내년 세계 공항서비스평가에서 인천공항이 11년 만에 처음으로 1위 자리를 경쟁 공항에 내줄 가능성이 크다”며 “인천공항의 위기는 전문성도 비전도 없는 정치인들이 줄줄이 낙하산을 타고 사장 자리를 꿰차고 앉은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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