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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원자력연구원, 파이로프로세싱 시설 본격 가동…핵연료 재처리 첫단추 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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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연구원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연구하는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 공정 시험 시설 ‘프라이드(PRIDE)’를 준공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다고 21일 밝혔다.

2009년부터 5년 9개월에 걸쳐 공사를 마친 프라이드는 지상 3층 규모로 330억원이 투입됐다. 향후 파이로프로세싱 원천 기술 개발에 사용될 예정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한 번 쓴 핵연료(사용후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기술이다. 사용전 핵연료는 우라늄 100%로 돼 있다. 이를 원자력발전소에서 핵분열시키면 소량의 플루토늄(0.9%)과 넵투늄ㆍ세슘 등의 핵종이 새로 만들어진다. 그 외 약 95.6%의 우라늄이 남지만 한국은 이를 전부 핵폐기물로 저장하고 있다. 아직 한참 더 태울 수 있는 연탄을 그냥 연탄재로 버리는 셈이다.

그러다 지난 4월 미국과의 원자력 협정이 개정됨에 따라 파이로프로세싱 연구 시설을 준공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사용후 핵연료에서 우라늄을 바로 추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난 협정 개정에서 파이로프로세싱의 첫 단계에 해당하는 전해환원 기술에 대한 동의만 얻었기 때문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총 3단계로 이뤄진다. 전해환원, 전해정련, 전해제련이다.

전해환원은 사용후 핵연료를 전기로 분해해 산소를 없애고 금속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전해정련은 사용후 핵연료에서 우라늄을 회수하는 과정이고, 전해제련을 통하면 사용후 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 등을 한꺼번에 회수할 수 있다. 한국은 전해환원만 가능하기 때문에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 있어 첫 단추 정도만 끼운 상태다.

반면 미국이나 프랑스 등 핵 선진국은 사용후 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뽑아내 재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질산을 사용하기 때문에 흔히 ‘습식 재처리’ 기술이라고 불린다. 미국 등은 플루토늄이 발전용 우라늄과 달리 핵무기의 원료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한국의 재처리 기술에 강하게 반대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이런 우려를 우회할 수 있는 기술이다. 순수한 플루토늄을 뽑아내는 대신 불순물(다른 핵종)과 섞여 있는 상태로 추출해 차세대 원전(고속로)의 연료로 다시 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핵연료를 녹이지 않고 재처리하기 때문에 건식 재처리라 불린다. 섭씨 500∼650도의 고온에서 전기분해를 이용해 사용후 핵연료를 금속으로 바꾼 뒤 우라늄 등을 분리한다. 이 과정에서 플루토늄도 일부 생성되지만 우라늄 등이 섞여 나오기 때문에 핵무기로 개발할 수 없다.

원자력연구원은 사용후 핵연료 대신 감손 우라늄으로 만든 모의 사용후 핵연료를 써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2020년까지 기술성과 경제성을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검증해 이를 기반으로 다음 원자력협정 개정에도 활용할 예정이다.

김종경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은 “파이로프로세싱은 소듐냉각고속로와 연계해 사용후 핵연료 관리 문제를 해결하고 원자력 발전의 지속가능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미래형 신기술”이라며 “이번 시설 준공을 통해 원천 기술 개발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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