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라고 전해라” 얼굴 회피하는 외면대화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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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 무명가수가 20년 전 받은 노래를 고쳐 세상에 내놓았다. 가사 내용은 “6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이렇게 이어진다. 노래 제목은 ‘백세 인생’. 지금 이 노래가 난리가 났다.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후렴이 대박을 치면서 26년 동안 무명가수였던 이애란씨는 스타가 됐다.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게스트가 됐고 검색 인기 순위에 올랐다. 오랜 무명 끝에 얻은 성공은 보는 이들도 감동이다.

 ‘못 간다고 전해라’는 짤방 덕에 떴다. 짤방은 ‘짤림방지’의 준말이다. ‘디시인사이드’라는 커뮤니티 사이트는 사진 게시판인 갤러리를 운영하는데, 사진 게시판이므로 당연히 사진을 올리고 글을 써야 한다. 사진 없이 글만 쓰면 이른바 ‘짤린다’. 그래서 잘리지 않으려고 사진을 하나 올려 두는 것이 짤림방지용 사진. 짤방, 더 줄여서 ‘짤’이 된 유래다.

 네티즌이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TV 화면 캡처 짤방을 올리면서 일약 화제가 됐고, 카카오톡의 이미지 아이콘 판매 1위까지 오르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더욱 빠르게 퍼졌다. 거의 모든 유머 코드가 이제 ‘~전해라’로 중독된 듯하다. 이렇게 인터넷 시대에는 콘텐트 자체보다는 콘텐트를 어떻게 갖고 노느냐에 따라 화제가 된다. 즉 인터넷 문화는 공급자의 제공보다 소비자의 해석에 방점이 있다.

 그런데 왜 ‘전해라’라는 말이 그렇게 관심을 끌었을까. 거기에 인터넷의 재미있는 속성이 있다. 인터넷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간접 대화다. 이쪽에서 말하면, 그 다음에 저쪽에서 말하는 식이다. 비동기 방식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서로 말하는 사이에 거리가 있음을 뜻한다. 아무리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해도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엔터’키를 친 순서대로 말을 전해준다. 즉 우리는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통해 전하고 있는 것이다.

 전한다는 것. 그것은 직접 이야기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카카오톡이나 스카이프(skype) 같은 프로그램에는 동영상으로 상대를 보면서 무료로 대화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문자를 주고받는 것을 선호한다. 얼굴을 마주 보고 직접 대화하는 것은 왠지 불편하다. 심지어는 같은 방 안에 있는 가족끼리도 문자로 서로 의사를 ‘전한다’. 얼굴을 마주 보는 대면대화에 비해 이렇게 얼굴을 회피하는 대화는 외면대화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런 외면대화 방식이 꼭 최근의 문화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실제 머슴이 없는데도 머슴이 있는 것처럼 주인과 손님이 대화를 나눴다. 손님이 ‘이리 오너라, 객이 하룻밤 재워달라 한다고 전해라’고 하면 주인이 ‘사정은 딱하나 여자 혼자라 안 된다고 전해라’는 식이었다. 손님과 주인이 내외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대면해서 대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잘 들여다본 서비스가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타임라인에 친구들이 ‘좋아요’ 버튼을 누르거나 댓글을 달면 끊임없이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댓글을 달았습니다’라고 알려준다. 우리가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른다는 것은 ‘좋아한다고 전해라’를 말하고 있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카카오톡에서 엔터키를 누른다는 것은 작성된 메시지에 덧붙여 ‘~라고 전해라’를 후렴처럼 붙이는 행위인 것이다.

 매일 지구에서 10억이 넘는 사람이 페이스북에서 전해주는 그 ‘좋아요’ 숫자가 늘어나기를 기다린다. 반대로 숫자가 줄어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카카오톡 이용자는 휴대전화 화면을 뚫어져라 지켜보며 카카오톡에서 알려주는 노란색 숫자가 사라지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직접 만나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고 손길을 느끼는 기억은 점차 잊어 가는 시대가 됐다. 대신 우리는 외로운 각자의 가상 공간에서 컴퓨터가 서로의 마음을 전해주는 외면대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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