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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저균 실험 처음”이라던 미군, 7개월 지나 “16차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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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주한미군이 올 4월 오산기지에 탄저균을 들여오고 시험하는 과정에서 규정 위반이나 위법은 없었다. 하지만 미국이 통보해주지 않으면 한국 측은 아무런 사실도 알 수 없었다.

한·미실무단 발표에도 남는 문제
생물학 샘플 반입 위법 없었지만
미 측 실토 전까지 한국 전혀 몰라

 17일 한·미 합동실무단(실무단)의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에지우드화생연구소는 지난 4월 24일 사균(死菌)화한 탄저균과 페스트균 검사용 샘플 각 1ml를 주한미군 오산기지로 발송했다. 북한의 생물학 무기 사용 등 위협에 대비하는 주한미군의 주피터(JUPITR) 프로그램에 따른 훈련을 위해서였다.

 연구소는 샘플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규정에 따라 3중으로 포장했다. 민간 물류 운송업체인 페덱스(FedEx)가 운반했고, 4월 26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28일 한국 세관에 ‘주한미군용’으로 수입 신고된 샘플은 29일 오산기지로 배송됐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한국 정부엔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9조 ‘통관과 관세’는 “미국 군대에 탁송된 군사화물, 공용의 봉인이 있는 공문서 등은 세관 검사를 행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 법률인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감염병 진단이나 연구 등을 목적으로 ‘고위험 병원체’를 국내로 반입하려면 보건복지부 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미군 측은 이미 사균 처리를 한 탄저균 샘플이라 고위험 병원체가 아니라고 보고 한국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 실무단은 이를 위법으로 보긴 힘들다고 판단했다.

 오산기지에서 탄저균 샘플을 받은 주피터 프로그램 훈련교관은 5월 20일과 26일 기지 내 생물검사실 안에서 샘플 일부로 성능 시험을 했다. 사용한 샘플은 멸균 비닐백에 넣어 고압멸균 처리했다. 생물안전수칙은 지켜졌다고 실무단은 결론 내렸다.

 하지만 오산기지에 반입된 샘플이 완전히 사균 처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미국 유타주에 있는 민간 더그웨이연구소에 의해 밝혀졌다. 연구소가 같은 샘플로 배양실험을 하다 일부 포자가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보고했고, CDC는 이를 미 국방부에 알렸다.

 주한 미대사관과 주한미군사령부가 국방부·외교부·보건복지부 등에 이를 통보한 것은 5월 27일. 오산기지에서 일부 샘플로 시험을 한 직후였다. 미 국방부는 주한미군에 “남은 샘플을 모두 폐기하라”고 지시했고, 주한미군은 보관 중이던 샘플을 폐기했다.

 규정이나 법률 위반은 없었지만, 미국 측이 ‘실토’하기 전까지 한국은 깜깜이었다는 게 문제로 꼽히고 있다.

 이날 합동실무단은 주한미군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15차례, 올해까지 총 16차례에 걸쳐 사균화한 탄저균 검사용 샘플을 한국에 반입해 실험했다고 밝혔다. “탄저균 샘플 실험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주한미군의 해명(5월 29일)도 조사 결과와 배치된다.

 실무단은 “해당 검사실에서 검체를 채취해 유전자(DNA) 및 배양 정밀검사를 한 결과 탄저균과 페스트균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다”고 했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주한미군이 이미 남은 샘플을 폐기한 뒤였기 때문에 DNA 검사로는 샘플이 탄저균과 페스트균이 맞는다는 사실 정도만 확인한 것”이라며 “정말 살아 있는 탄저균 포자가 있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유지혜·안효성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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