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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 위해 뭉쳤다 … 편견까지 지우는 ‘장애인 세차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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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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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이광열·이상훈·이광준·이인혁씨(왼쪽부터) 등 새차랑 팀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유명한 기자]

17일 오후 1시 울산북구청 주차장. 청년과 어른 4명이 초음파 에어 세차기를 돌리며 세차를 하고 있다. 야외에서 세차하는 바람에 추울 법도 한데 이상훈(26·자폐성 장애 3급)씨는 “춥지 않다”며 활짝 웃었다.

울산 지역 부모 모여 협동조합 설립
교육청·구청에서 출장서비스 맡아
“특성 맞춘 일자리 계속 늘어나길”

 이들은 예비 사회적 기업인 울산장애인 자립협동조합의 ‘새차랑’ 팀. 팀원은 발달장애인 4명과 비장애인 1명 등 5명이다. 이들은 매주 울산시교육청·강북교육지원청·울산북구청 등에서 손세차를 한다. 차에 따라 2만(경차)~6만5000원(승합차·대형 SUV)을 받는다. 세차 때는 외관 세차와 광택, 실내 살균, 연막 작업, 휠 세차 등 역할을 나눠서 맡는다. 이광열(43) 총괄이사는 “발달장애인 특유의 꼼꼼함과 꾸준함을 살려 완벽한 세차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차랑 팀이 만들어진 데는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절박함이 있었다. 지난해 2월 김미경(48)씨는 고교 졸업을 앞둔 아들 이인혁(20·지적장애 2급)씨의 취직을 고민했다. 김씨는 “울산 주간보호센터와 보호작업장 등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고작 300명 정도”라며 “한 해 80~100명의 장애인이 사회로 진출하지만 아들이 일할 곳은 없었다”고 말했다. 물론 일반 회사 취직은 엄두도 못 냈다고 한다.

 김씨는 결국 2013년 울산장애인부모회 사무국장이던 이광열 이사를 찾았다. 김씨의 제안에 이 이사는 발달장애인 부모 3명을 더 모았다. 이들은 지난해 7월 1000만원을 출자해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러곤 발달장애인 청년 등으로 지난 2월 세차업에 뛰어들었다. 이 이사는 “세차는 차량 내외부와 타이어 부분처럼 업무를 쪼개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며 세차업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이상훈씨는 꼼꼼한 성격에 구석구석 세차하기를 좋아한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증상을 겪는 박진우(28·지적장애 2급)씨도 앉아서 포장 같은 일을 하기보다는 활동적인 세차가 더 적성에 맞다고 했다.

 세차를 하면서 장애인들은 서서히 변해갔다. 이인혁씨는 어떤 종류의 차를 하루 몇 대나 세차하는지 물어볼 정도로 인지력이 향상됐다. 손님을 반갑게 맞이할 정도로 말수와 자신감도 늘었다. 어머니 김씨는 “1년 전에는 생각도 할 수 없던 일”이라며 “인혁이가 시민의 한 사람으로 조금씩 성장하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상훈씨는 “그동안 다른 사람과 다투는 것은 엄두를 못 냈다”며 “세차를 통해 다른 사람과 논쟁도 벌이면서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을 배우고 자립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고 말했다.

 팀 운영에는 어려움이 많다. 매일 일감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새차랑은 하루 평균 3~4대를 세차해 한 달에 200만~25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하지만 매달 50만원 이상 적자다. 울산북구청 등 지역 기관의 도움이 없다면 팀 유지조차 힘든 편이다. 울산중구청 등으로 사업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려는 이유다.

 이 이사는 “비장애인의 일자리를 조금 얻어내는 것보다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살린 안정적인 일자리 20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팀원들은 의지를 보였다.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 굳건히 자립하기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

글, 사진=유명한 기자 famo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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