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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트럼프 독설 쓰레기통 가야 … 대통령 자격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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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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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를 히틀러에 비유한 필라델피아 데일리뉴스 8일자 1면. 오른쪽은 ‘트럼프를 우주로 보내자’ 해시태그(#)가 붙은 합성 사진. [데일리뉴스·페이스북 캡처]

8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주요 방송과 신문은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트럼프 발언’ 관련 기사로 도배가 됐다. 지난 6월 대선 출마선언 이후 온갖 막말과 궤변으로 화제를 몰고 온 도널드 트럼프지만 이번은 핵폭탄 급이다.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힌 것은 물론이고 국제사회까지 성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격한 반응을 보인 건 백악관이다.

공화당 내서도 “경선 관둬라” 성토
프랑스 총리 “IS처럼 증오 부추겨”

인터넷선 ‘우주로 보내자’ 해시태그
히틀러 비유 사진 1면 실은 언론도
트럼프 “옳은 일 할 뿐” 꿈쩍 안 해

 조시 어니스트 대변인은 이날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모욕적 언사와 독설로 가득 찬 트럼프의 선거운동은 쓰레기통에나 들어갈 저질이다. 그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격하게 몰아세웠다. 아무리 상대편 정당이라 해도 대선 후보로 나선 인사에 대해 백악관이 공식적으로 이런 비난을 퍼붓는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백악관은 또 “다른 공화당 주자들도 트럼프가 만약 후보가 된다면 이를 거부하겠다고 당장 선언하라”며 공화당 측에 ‘트럼프 퇴출’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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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마음에 들진 않지만 트럼프에 대해 입장표명을 자제해왔던 공화당 지도부도 상황이 이렇게 되자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공화당 1인자격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이날 긴급 회견을 열고 “트럼프의 발언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트럼프의 발언은 우리가 추구하는 게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당 데이비드 졸리 하원의원은 아예 “트럼프가 이제 경선을 그만둘 때”라고 주장했다. 같은 공화당 경선 주자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TV에 나와 “트럼프는 지옥에나 가라”고 말했다. 필라델피아 데일리뉴스는 1면에 트럼프가 오른팔을 들어올리고 있는 사진과 ‘새로운 광기’란 제목을 달며 히틀러에 비유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백인우월주의 뉴스 사이트 ‘데일리 스토머’는 “트럼프는 최후의 구세주”라 칭했다.

 나라 밖도 “국내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외교 관례를 깨고 ‘트럼프 성토’에 나섰다.

 “분열적이고 완전히 틀린 것”(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트럼프가 다른 누군가처럼(이슬람국가를 지칭)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 “트럼프를 캐나다에 입국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캐나다 신민주당 톰 멀케어 대표)는 발언이 쏟아졌다.

 캐나다에선 부동산 명칭에서 ‘트럼프’를 빼자는 운동이 번지고 있고 그동안 트럼프의 사업 파트너였던 아랍에미리트(UAE)의 랜드마크그룹은 트럼프 회사 제품을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인터넷에선 “트럼프를 우주로 보내자(#sendDonaldtospace)”는 해시태그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전세계적인 ‘융단폭격’에도 트럼프는 꿈쩍도 않고 있다.

 “(입국금지는) 의회가 테러예방을 위한 구체적 행동을 마련할 때까지의 잠정적 조치”라고 전제하면서도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 (입국금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더 많은 세계무역센터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내가 하는 일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도 했다. 자신의 주장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내 일본·독일·이탈리아 이민자들을 강제수용소 등에 격리했던 루스벨트와 조치와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이다.

 정치전문 미디어인 폴리티코는 8일 “공화당 거물 일부는 트럼프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발언이 도를 한참 넘은 것처럼 보이지만 또다시 보수 유권자의 지지를 얻으며 오히려 지지율이 상승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인구분포 변화로 공화당 지지 계층인 중산층 백인들의 수는 크게 줄었다. 게다가 중산층의 실질소득은 최근 25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위축된 백인 중산층의 반 이민정서, 민족주의 성향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트럼프가 해 준다”는 ‘대리만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USA투데이가 8일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 지지자의 68%는 “트럼프가 무소속이나 제3당으로 나와도 계속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발언도 우발적 발언이 아닌 트럼프의 ‘의도된 작전’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실제 트럼프는 이번 문제 발언을 할 당시 이례적으로 준비한 원고를 보며 읽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서울=하선영 기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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