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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에 맞선 저항 아이콘 … 로페스 대선 주자 급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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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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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총선에서 우파 야당연합이 좌파 집권당을 압도하며 차기 대선 주자로 레오폴도 로페스(44) 민중의지당 대표가 급부상하고 있다. 그는 베네수엘라를 철권 통치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과 후임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대한 반정부 시위를 평화적으로 주도해 ‘베네수엘라의 만델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로페스는 지난해 2월 반정부 시위 주도 등의 혐의로 체포돼 올 9월 13년9개월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작년 반정부 시위 주도해 복역 중
지지율 50%, 현역 정치인 중 1위
초대 대통령 배출 명망가 집안 후손
부인은 방송인 출신으로 인권운동

 베네수엘라 야당연합은 다수 의석을 기반으로 다음달에 로페스 등 정치범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사면법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8일 전했다. 야당은 다음달 5일 새 의회가 구성된 이후 정치범 석방을 위한 법을 통과시킨다는 전략이다. 야권의 움직임은 전체 의석의 3분의 2 이상 얻으며 탄력을 받고 있다.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6일 치러진 총선에서 야권 연대인 민주연합회의(MUD)가 전체 167석 중 113석을 얻었다고 8일 발표했다. 전체 의석의 3분의 2인 111석을 웃도는 결과다. 3분의 2 의석이면 개헌과 대통령 탄핵을 포함한 국민투표 발의, 대법관·장관 파면 등이 가능하다.

 야당은 경제 실정과 부정부패 책임을 물어 마두로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임기가 2018년 말인 마두로 대통령은 임기 중반인 내년 4월 이후 국민 소환 대상이 될 수 있다. 중산층과 대기업 노조를 주요 기반으로 하는 MUD는 내년 대통령 소환 투표를 시행하기 위해 최근 400만 명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원유 가격급락 등으로 올해 베네수엘라 경제는 마이너스 10% 성장하는 데 이어 내년에는 마이너스 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침체다.

 극심한 경제 침체가 1999년 차베스 집권 이후 지속된 16년간의 좌파 의회를 무너뜨렸다. 야당 연합의 지도자 로페스는 현재 지지율 50%로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다. 옥살이를 마다하지 않고 정권에 대항해 저항의 아이콘이 됐다. 그는 지난해 2월 반정부 시위 주도 혐의로 체포 영장이 발부되자 트위터에 “당신(마두로 대통령)은 나를 체포할 배짱이 있는가? 진실은 우리 편”이라는 글을 올린 뒤 자수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우리는 로페스 등 양심수들과 연대해 있다”며 그의 석방을 요구했다. 유엔 인권기구와 국제 인권 감시기구인 휴먼라이츠워치(HRW) 등도 그의 석방을 촉구했다.

 로페스는 베네수엘라 초대 대통령 크리스토발 멘도사의 후손으로 정치 명망가 집안 출신이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한 뒤 국영 석유회사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했으며 수도 카라카스의 5개 자치시 중 가장 부유한 차카오 시장을 8년 지냈다. 방송 진행자를 지낸 부인 릴리안 틴토리(37)는 2003년 베네수엘라 카이트 서핑(서핑과 패러글라이딩을 접목한 스포츠) 대회에서 우승했다. 틴토리는 여성 폭력 근절과 시각·청각 장애인들의 권리 옹호 활동을 했으며 남편의 수감 뒤 정치범 석방 운동에 적극 나서왔다. 가디언은 “로페스 부부는 출중한 외모 때문에 바비인형과 남자 친구 켄 같다는 평가를 듣는다”고 보도했다. 로페스도 차베스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대중 인기를 내세워 어필하는 정치인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베네수엘라 야당이 집권했지만 갈 길은 멀다. 경제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베네수엘라 수출의 96%를 석유가 차지하는데 최근 국제 유가가 배럴당 30달러까지 떨어지며 경제에 치명상을 입었다. 올해 인플레이션은 세계 최고 수준인 200%로 예상되며 내년에는 800%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통화 가치는 암시장에서 80% 이상 폭락했다. CNN은 총선에 승리한 MUD가 ‘생산적인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약했으나 구체적인 정책이 부족하다고 보도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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