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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더 강해지도록 하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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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준현
김준현 기자 중앙일보 팀장 겸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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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경제부문 기자

삼성은 아니길 바랐다. 너나없이 위기를 호소할 때 삼성만은 “우리를 보라, 희망은 있다”고 얘기해 주길 바랐다. 삼성공화국이니 삼성왕국이니 시기·질투해도 삼성은 한국 경제의 자랑이었으니까. 그러나 요즘 삼성의 행보를 보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삼성이란 프리즘을 통해 우리 경제의 위기를 보는 까닭이다.

 지난 4일 발표된 삼성그룹 임원 인사는 이런 위기의 상징적 표현이다. 임원 승진자는 2009년(247명) 이후 가장 적은 294명이었다. 줄어든 임원 자리만 최소 2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원 아래 직급도 명예퇴직이란 이름으로 올해 내내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삼성의 핵심이자 세계 최고의 IT 기업 중 하나인 삼성전자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2013년 37조원에 육박했던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25조원, 올해도 27조원에 머물 전망이다. 특히 수년간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스마트폰이 애플과 중국 업체에 끼여 샌드위치 신세다.

 혹 삼성이 자신감을 잃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도 있다. 비용 절감을 통한 위기 극복이 필요할 때 기업은 아웃소싱하던 부품 조달을 본사 직접 생산 체제로 전환하기도 한다. 삼성전자도 베트남에 스마트폰 공장을 가동하면서 일부 부품의 직접 생산 비율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삼성에 의존하던 협력업체들은 어느 정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도 이런 점을 예상했던 것 같다.

 삼성전자 협력업체 한 곳의 대표인 A씨는 지난 10월 협성회(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의 협력사 협의회) 총회에서 들었던 얘기가 “충격적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당시 삼성 관계자가 공식석상에서 협력업체들에 ‘더 이상 삼성전자만 믿지 마라. 사업을 다각화하시라’고 하더라. 협력업체의 이탈을 단속하던 예전과는 너무나 달라진 모습이었다. 삼성조차 어려워하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인력을 줄인다고, 협력사에 주던 물량 일부를 직접 생산한다고 해서 삼성전자를 탓할 수는 없다. 그만큼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방증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 또한 기우일 수 있다. 삼성전자가 긴장하고 있다 해도 영업이익이 30조원에 육박하는 초우량 기업이다. 과감한 투자와 사업 전환으로 위기를 극복한 경험도 많다.

 정작 삼성을 보며 숨이 턱 막히는 것은 삼성이 이 정도면 다른 기업들은 오죽할까 싶어서다. 삼성이 워낙 주목받아서일 뿐 구조조정의 강도는 여타 기업이 훨씬 강하다. 철강·화학·중공업 등 상당수 주력 산업이 이미 병원 신세다. 30대, 50대 기업 명단을 펴놓고 쭉 훑어보시라. 10년 뒤에도 글로벌 경쟁력에서 온전할 기업이 몇 개나 있는지.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개혁 관련 법안 처리와 관련해 “(경제가) 다 죽고 난 뒤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야당을 압박했다. 노동개혁이, 금융개혁이 성공한다고 이 나라 경제가 살아날지 알 수 없다. 각종 경제 활성화 법이 경제를 기름지게 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다. 안 하면 죽는다는 것이다.

김준현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