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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 1%P 떨어지면 실업 5만~6만명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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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문턱을 서성이고 있다. 연이어 터지는 각종 노사분규와 정책에 대한 불안감으로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면서 연간 경제성장률이 3%대로 추락할 처지에 놓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시 일어설 기력마저 상실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사실을 인정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주가가 오르면 하반기에는 경제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민간 경제전문가들은 하반기 경제가 조금 좋아질 수는 있지만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보고 적극적인 경기대책의 필요성을 강조 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경기를 살리려면 투자가 살아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저성장의 위험=성장률 하락은 경제에 온갖 해악(害惡)을 가져온다. 저성장으로 개인과 기업의 소득이 늘지 않으면 당장 소비가 얼어붙는다. 이는 판매 감소로 이어져 기업들의 도산으로 나타난다. 창업이나 신규 투자도 어려워진다. 실업률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재경부 관계자는 "성장률이 1%포인트 낮아지면 그에 따라 5만~6만명의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실업률은 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0.2%포인트 정도 올라가는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5월 성장 전망치를 5%대에서 4%대로 낮추면서 실업률을 2.9%에서 3.3%로 높여잡았다.

실업은 소비감소로 이어져 경기침체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성장이 잠재성장률에 못 미치면 도산이 늘고, 금융부문의 부실이 누적되는 등 경제시스템의 위기가 온다"고 지적했다.

◆'L'자형 경기침체 우려= 씨티은행의 이코노미스트 오석태 부장은 "경기하강의 속도 면에서 세계적으로 한국 경제가 가장 안좋다"고 전제하고 "한국 경제는 지금 본격적인 불황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막상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추경 편성이나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회복은 어렵고(LG경제연구원 오문석 경제연구센터장), 돈이 있으면서도 안 쓰는 상황에선 당장 소비가 살아날 가능성도 작다(박종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그나마 정부가 적극 나서서 할 만한 실현 가능성 있는 대책은 어떻게든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살리는 것이다. 3백조원에 달하는 시중의 부동자금이 투자로 이어지게 할 수만 있다면 경기침체의 악순환을 단절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민간 경제전문가들은 투자회복을 위해서는 노동문제와 규제완화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한다. 3백만명에 달하는 신용불량자들을 소비주체로 끌어들이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정문건 전무).

적극적인 재정정책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화여대 전주성 교수는 "경기침체기에 균형재정을 고집하는 것은 긴축을 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효율적인 예산집행을 전제로)국내총생산(GDP)의 1~2%(5조~10조원) 규모의 국채를 발행해 시중 부동자금도 흡수하고 경기에 활기를 넣는 방안을 생각해 볼 때"라고 말했다.

송상훈.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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