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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상상을 예술 작품으로 구현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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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호 8 면

흑해에서 영감을 받은 ‘해마 목걸이’를 착용한 모델.

모든 창작자의 고민은 영감(靈感) 얻기다. 영감이라는 게 전광석화처럼 번득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장르를 넘나드는 폭 넓은 연구와 세심하고 깊이있는 분석을 통해 마른 수건 쥐어 짜듯 추출해내기도 할 터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얻어낸 영감을 어떤 결과물로 만들어내느냐다.


하이 주얼리와 워치로 이름난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도 이런 고민의 한복판에 늘 서 있다. 올해 초 국내에서 선보인 ‘볼 드 레전드(Bals de Legende·전설의 무도회)’ 컬렉션은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겨울궁전 무도회’(1903)를 비롯해 20세기를 대표하는 5대 무도회에서 영감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장화신은 고양이』로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의 동화 『포단(Peau d’Ane)』에 착안한 작품들로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를 구현했다.

카스피해에서 영감을 받은 ‘바그 미스터리유즈 클립’.

이번엔 바다다. ‘세븐 씨즈(Seven Seas·7대양)’라는 제목의 새 컬렉션은 아드리아해·지중해·카스피해·아라비아해·대서양과 인도양·홍해·흑해에서 영감을 얻었다.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던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을 재발견한 ‘아틀란타이드(L’Atlantide·2007년)’와 웨스트 코스트의 웅장한 풍경을 담아낸 ‘캘리포니타 레버리(Califonia Reverie·2013)’ 컬렉션의 연장선상에 있다. 넘실대는 파도와 바다를 붉게 물들인 저녁 노을, 강렬한 햇살과 우아한 달빛이 만들어내는 은빛 파편의 물결, 그리고 그 속에 사는 기운 충만한 수중 생명체들의 원초적 아름다움은 반클리프 아펠이 구현하고자 한 모든 것이었다.


홍콩 페닌슐라 호텔 특설 전시장에서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열린 ‘HK 하이 주얼리 런치-세븐 씨즈 컬렉션’은 영감이 어떻게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는지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 현장에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인도양과 대서양에서 영감을 받은 ‘판게 목걸이’.

아드리아해에서 영감을 받은 팔찌.

카스피해에서 영감을 받은 ‘심해 목걸이’. 펜던트와 술 장식을 따로 떼어내 착용할 수 있다.

20일 오전 페닌슐라 호텔 특설 전시장으로 아시아 각국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수평선을 중심으로 남색 바다와 붉게 물든 하늘이 화면을 반으로 가르고 있는 사진 옆에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보석들이 화려한 조명 속에 당당한 자태를 차례로 뽐내고 있었다.


‘7대양’은 소설 『정글북』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문학가 러디어드 키플링(1865~1936)의 시집(1896)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당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대영제국의 위세를 이 시집에 담았다. 그리고 중세 유럽 뱃사람들에게 이 말은 ‘세상의 모든 바다’를 뜻하는 말이었다. 반클리프 아펠의 수장 니콜라 보스(Nicolas Bos)는 이번 컬렉션 테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3년 전 샤를렌 모나코 공비를 위한 왕관을 만들면서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전직 수영 선수였던 그녀는 바다와 관련한 자선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바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주얼리에 담으려는 의도였다. 그 과정에서 ‘7대양’이라는 테마를 찾아낼 수 있었다. 르네상스 초기 중세 유럽은 세계 속 바다가 7대양이 전부라고 믿어지던 시기였다. 과학적 사실보다는 인어공주 같은 신비한 생명체가 존재할까, 홍해 바다는 정말 붉을까 같은 이야기가 난무했다. 신화적이면서도 문학적인 사실들이 더 진짜같이 느껴진 시간이었달까. 우리는 이 상상이 어떻게 진화되고 발전되는지 연구하면서 컬렉션으로 승화시켰다.”

홍해에서 영감을 받은 ‘에리트로 클립’

‘블랙 & 화이트’로 표현한 흑해 시리즈 눈길 실제로 판게(PANGEE) 목걸이와 귀걸이는 모나코 알베르 2세 왕자와 샤를렌 공주의 결혼 선물인 오션 네크리스에서 영감을 얻었다. 넘실대는 파도와 부서지는 거품의 문양을 화이트 골드와 라운드 컷&페어 컷 다이아몬드로 고스란히 재현했다.


반클리프 아펠은 전통적으로 우아함과 신비한 아름다움을 지닌 요정의 이미지를 구현해 왔는데, 이번 ‘7대양’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틀랜틱과 인디언 오션’ 코너에서는 노란색 물고기 꼬리를 지니고 커다란 푸른 공에 앉아 있는 ‘씨 페어리 클립’이 눈길을 끌었다. 니콜라 보스는 “컬렉션에 사용된 원석의 색은 ‘해피 컬러(Happy Colour)’라 일컬어지는 유쾌하면서도 기분 좋은 색감을 선별한 것으로 일상 속에 반클리프 아펠만의 앵글과 철학을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주얼리를 여러 가지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성 역시 반클리프 아펠의 특징 중 하나다. 반지 하나를 한 손가락에 낄 수도 있고 두 손가락에 낄 수도 있는 ‘비트윈 더 핑거 링’이나 목걸이가 클립과 팔찌, 혹은 벨트로도 변신이 가능한 스타일이 대표적이다. 아라베스크로 둘러싸인 15.73캐럿 짜리 쿠션 컷 그린 투어말린이 돋보인 클라포티 목걸이는 컬처드 펄과 그 펄이 달려있는 부분을 분리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흑해에서 영감을 받은 주얼리가 궁금했다. 화이트 골드와 라운드 다이아몬드, 블리올레트 컷 블랙 스피넬과 오닉스 비즈를 적절히 활용한 ‘투르빌리옹(TOURBILLON) 반지’는 흑해를 제대로 형상화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블랙 앤 화이트’ 컨셉트를 충실하게 구현한 덕분이다.


아무리 멋진 영감이라도 근사한 작품으로 표현되지 못하면 무용지물일터. 영감을 뒷받침하는 기술력이 필수인 이유다. 반클리프 아펠의 기술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미스터리 세팅(Mystery Setting)’이다. 표면에서 보았을 때 원석을 지지해주는 발물림(프롱)이 전혀 보이지 않도록 세팅하여 원석 본연의 광채와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기술이다. 마치 망고를 먹기 좋게 잘 잘라놓은 모습이다.


이번에 볼 수 있었던 것이 카스피해에서 영감을 받은 ‘바그(VAGUES) 미스터리유즈 클립’이다. ‘바그’는 프랑스어로 파도, 영어로는 모호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넘실대는 파도처럼, 아련한 포말처럼 푸른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의 조화가 눈길을 확 붙든다. 이 같은 주얼리를 제조하기 위해 ‘맹도르(Mains d’Or·위대한 손)’라 불리는 메종의 장인들은 0.2mm이하의 네트(net)에 이중의 커팅 작업을 거친 스톤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세팅한다.

아라비아해에서 영감을 받은 ‘에퀴메 다이아몬드 목걸이’

니콜라 보스 반클리프 아펠 CEO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비즈니스가 아트를 만났을 때니콜라 보스는 반클리프 아펠에서 CEO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동시에 맡고 있는 ‘능력자’다. 스테판 라에 반클리프 아펠 한국지사장은 “경영과 아트의 수장을 동시에 맡고 있는 경우는 반클리프 아펠이 유일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을 시작으로 1992년 리치몬트 그룹에 들어와 2013년 1월 1일부터 반클리프 아펠을 이끌고 있다.


경영학도인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까지 됐다. “관심사는 항상 예술과 박물관에 있었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커리어는 박물관에서 시작했다. 각종 전시와 아티스트들에 맞춰 일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비즈니스가 크리에이션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부분임을 깨달으면서 비즈니스를 크리에이티브 프로세스에 전문적으로 가미했을 때의 결과물들이 궁금해졌다. 그러면서 아티스트가 최고의 프로젝트를 최상의 환경에서 선보일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에 대해 목말라 있던 시점에 반클리프 아펠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이 비즈니스는 다른 비즈니스와 어떻게 다른가.“여기서 말하는 비즈니스는 1회성의 상업 목적을 띄는 1차적 결과물에 치우치기 보다는 아티스트와 브랜드 그리고 영감이라는 3개의 주체가 접목되어 창조적인 작업, 이야기 그리고 작품으로 탄생되고 이를 옳은 시점에, 맞는 방법으로, 알맞은 채널을 통해 소개하고자 하는 프로세스를 의미한다.”


영감은 어떻게 작품으로 승화되나. “다양성의 결합이다. 한 세기마다 바뀌는 영감의 주체가 있는가 하면, 우리 옆에 항상 존재하는 자연· 숲· 바다· 하늘도 있다. 그리고 때로 미술의 세계와 메종이 통하는 접점의 순간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모두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각각 다른 앵글을 잡아내려고 노력한다.”


디자이너들은 얼마나 되나. “15~20명 정도다.”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테마를 정하고, 그와 연결점이 되는 예술 문화, 관련된 역사를 조사한다. 어느 정도 리서치가 완료되고 모든 관련 팀의 일원이 동의를 얻고 나면 실질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스케치를 시작하고, 원석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각 디자인에 걸맞는 최상의 원석을 선별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한다. 수십 번의 반복 작업을 통해 스케치와 원석이 정해지면 우리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들은 메종의 장인들과 주얼리 메이킹 팀에서 이루어지는데 통상적으로 이 과정은 1년 정도 소요된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들 때는 어떻게 하나. “하하, 마음에 안든 적은 없었다. 다만 우리가 추구하는 컬렉션 혹은 메종의 이야기와 방향에서 차이가 있다고 간주될 때는 설명을 하기 위해 간단한 스케치를 전달하고는 한다.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다 해도 우리랑 맞지 않는다면 방향을 수정하는 게 맞는다고 믿는다. ‘좋아’ 혹은 ‘싫어’를 얘기하지는 않지만 이해를 돕고 고무시키고자 노력한다.”


아시아 혹은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나. “1906년 메종이 설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20년대에는 한국·일본·중국의 문화에서 받은 영감이 원천이 된 아르데코 양식이 유행했다. 하지만 반클리프 아펠의 경우 아시아 문화 자체에서는 영감을 많이 받아도 당시 시대의 예술 양식에는 크게 영향 받지 않았다. 한국 문화의 경우, 도자기에 대해 큰 궁금증을 갖고 있다. 자연으로부터 온 요소, 절제된 세련미 그리고 순수함까지 정말 유니크한 것 같다. 특히 청자가 자아내는 푸른색의 절묘한 색조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


홍콩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반클리프 아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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