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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경제학자의 명화 읽기 '그림이 달리 보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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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달의 책] 어제로 읽는 내일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12월 주제는 ‘어제로 읽는 내일’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발자취를 다양한 방식으로 돌아보며 미래사회를 예측하는 역사서 세 권을 골랐습니다. 2015년의 마지막 달, 이 책들과 함께 새해의 청사진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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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경제사
송병건 지음, 아트북스
312쪽, 1만8000원

바로크 미술의 대가 반다이크의 1639년 작 ‘제인 굿윈 부인의 초상’을 보자. 영국 찰스 1세의 총애를 받는 궁정화가로 1630년대 귀족 초상화의 대가로 이름을 날리던 반다이크의 이 작품 속 모델은 보석이 달린 값비싼 드레스를 입고 서 있다. 감상 포인트는 사람마다 제각각일 터. 그림의 구도나 색채, 기법에 집중할 수도 있고 제인 굿윈 부인이라는 인물에 눈길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의 눈길은 모델이 손에 쥔 튤립에 집중된다.

 경제사를 연구하는 저자는 그림 속에서 당시를 뒤흔들었던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을 읽어낸다. 16세기 오스만제국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튤립은 신흥 부국으로 떠오른 네덜란드에서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됐다. 게다가 당시 네덜란드에서 고안한 혁신적인 금융상품인 ‘선물계약’이 가세하며 튤립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하지만 거품은 이내 꺼졌고 파산자가 속출했다.

 이처럼 경제학자의 시선을 거친 그림은 역사라는 날실과 경제라는 씨실이 짜낸 훌륭한 경제사 텍스트로 새롭게 태어난다. 마치 수수께끼를 풀듯, 그림 속 단서를 따라 경제사를 읽어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임진왜란 당시 원군을 보낸 명나라에서 은의 수요가 늘어나자 남미에서 은 채굴을 늘려야 했고, 결국 노예무역에 늘어나게 됐을 것이라는 추정도 그림 속 인물과 풍광이라는 시각적 요소가 더해지며 읽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경제와 역사는 그 자체로는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탓에 단맛을 입힌 ‘당의정 스타일’의 글쓰기와 접근은 많았다. 하지만 경제학과 역사학의 속성을 모두 갖춰 ‘박쥐와 같은’ 경제사를 그림으로 읽는 이 책은, 새로운 단맛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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