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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사회의 만남] 2. 충돌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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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0면

# 지난 21일 오후 1시 서울 동국대 만해광장. 전교조 조합원 5천여명이 모여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저지를 위한 연가투쟁' 출정식을 열었다.

"정보인권 수호투쟁에 1천89개 시민.인권 단체가 동참했고, 학부모 50만명이 자녀 신상정보를 NEIS에 입력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원영만 전교조 위원장)

"주동자는 사법처리하고, 단순 가담자도 행정징계하겠다."(교육부 이영만 교원정책심의관)

이렇게 NEIS를 반대하는 쪽과 강행하려는 쪽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 지난 10일 오전 10시50분쯤 전남 장흥군청 앞. 핵폐기물 처리장 주민 설명회가 11시부터 예정돼 있었지만 설명을 할 당사자인 산업자원부 관계자 10여명은 군청에 들어가지도 못했다.'핵 폐기장 반대 범군민대책위' 소속 주민 1백여명이 화물차 2대로 정문을 봉쇄하고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관계자들은 애초에 오후 4시30분까지 잡혀 있던 주민 설명회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상경했다. 오는 7월 최종 입지 선정을 앞둔 핵폐기물 처리장을 둘러싼 갈등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부는 지난 2월 초 핵폐기물처리장 후보지로 전남 영광.전북 고창.경북 울진.경북 영덕 등 4곳을 선정해 발표한 상태지만 후보지 주민들의 반대는 끊이지 않고 있다.

# 1991년 착공된 새만금 사업은 96년 시화호 수질문제가 부각되자 환경단체들이 '새만금 지역의 수질이 시화호보다 더 나쁘다'고 주장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는 논란이 끊이지 않자 99년 민관공동조사단을 구성, 수질보전대책을 점검했다. 하지만 사업추진여부에 대한 찬반의견이 팽팽해 2년간이나 사업이 중단됐다. 이 과정에서 당초 98년 완공하려던 방조제 공사는 2006년으로 연기됐다.

결국 정부는 2001년 5월 수질이 다소 나은 동진강 유역을 먼저 개발하고 만경강 유역은 나중에 개발하는 '순차적 개발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새만금을 둘러싼 논란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종교계와 환경단체들이 갯벌 보존을 이유로 새만금 사업의 중단을 요구함으로써 해묵은 논쟁이 다시 시작됐다.

갈릴레이의 지동설에서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현재 국내의 NEIS.핵폐기물 처리장.새만금 논란까지….

과학과 사회의 갈등이 수그러들기는커녕 갈수록 격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지동설과 진화론에서 보듯 새로운 지식에 따른 문화.이념적 충격이 갈등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권력층과 소수 과학기술자들의 과학기술 정보.지식 독점에 일반시민과 사회단체가 저항하는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대표적인 갈등 사례만 꼽아봐도 ▶생명복제▶방사선 처리 음식의 안전성▶유전자조작식품(GMO)의 안전성▶수돗물 불소화 등 넘쳐난다.

일부에선 과학자들이 전면에 나서기도 하고, 일부에선 묵시적.암묵적.이론적으로 정책 결정에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핵심은 과학기술(또는 개발)대(對) 환경(또는 윤리)의 대결이다.

그동안엔 "과학기술은 전문가들만의 영역"이라는 개념이 정책 추진자들의 의식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분석이다. 과학기술은 사회의 다른 영역과 달라 복잡하고 난해해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만이 주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에 시민들은 과학기술과 관련된 정책이나 이슈가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들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렇게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결과, 합리적인 사실에 기초하기보다는 목소리 큰 사람 뜻대로 결정이 뒤집히는 비합리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영희(과학사) 가톨릭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전문가들은 '무지에 기초해 불필요한 오해와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시민들을 불신하고, 시민들은 '과학자.정책결정자들이 유리한 사실만 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金교수는 "과학과 사회의 이런 갈등을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볼 시기"라고 말한다.갈등으로 인한 비효율이 한국사회가 감당하기엔 너무 커져버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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