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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거대한 유령 같은 대저택서 벌어지는 핏빛 동화 ‘크림슨 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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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 피크’에서 미스터리에 싸인 남매를 연기한 톰 히들스턴(왼쪽)과 제시카 차스테인. [사진 UPI]

무서운 동화책처럼 어둡고 매혹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는 스릴러가 온다. 25일 개봉하는 ‘크림슨 피크’는 ‘다크 판타지의 거장’이라 불리는 기예르모 델 토로(51) 감독의 신작이다. 멕시코 출신인 델 토로 감독은 ‘헬보이’ 시리즈(2004~2008)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 ‘퍼시픽 림’(2013) 등 독창적이면서 기괴한 판타지 영화를 연출하며 두터운 팬층을 이끌고 있다. 델 토로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자신의 독특한 상상력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 동화, 고딕 로맨스, 공포 등이 하나로 어우러진 영화를 완성했다.

 ‘크림슨 피크’는 미국 상류층 여성 이디스(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의문의 영국 귀족 토머스(톰 히들스턴)의 청혼을 받아 토머스와 그의 누나 루실(제시카 차스테인)이 사는 오래된 대저택 알러데일 홀로 이사를 오면서 겪는 괴이한 사건을 다룬다. 어릴 적부터 유령을 보는 능력을 가진 이디스는 대저택 곳곳에서 유령들을 목격하면서 서서히 토머스 남매의 정체에 대한 의심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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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 토로 감독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델 토로 감독이 수공예 장인처럼 공들여 완성한 고딕풍 저택의 공간이다. 영화 속 주요 공간인 대저택을 “하나의 캐릭터이자 거대한 유령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는 델 토로 감독은 3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저택 세트를 짓고 촬영했다. 엘리베이터와 벽난로, 수도꼭지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음침한 외관부터 벽지와 바닥 무늬, 창문과 가구의 문양 등 색상과 질감의 디테일까지 세세하게 살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성장 배경을 유추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의상,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게 묘사된 유령 등 다양한 시각적 요소가 배치돼 있다.

 여러 장르가 혼합된 이야기도 흥미롭다. 영화는 이디스가 저택과 토머스 남매의 비밀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요소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디스와 토머스의 애절한 로맨스를 중점적으로 그려낸다. 『폭풍의 언덕』(에밀리 블론테 지음)과 같은 고딕 로맨스 소설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진하게 녹아 있다. 비극적 상황을 증폭시켜 주는 서정적인 배경음악도 한몫을 한다.

 이처럼 여러 시각적·장르적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지만, 영화의 후반부는 저택과 토머스 남매의 비밀이 드러나는 과정이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며 긴장감을 잃는다. 다소 급격하게 마무리되는 결말도 아쉽다. 델 토로가 직접 빚은 매혹적인 비주얼만큼은 오랜 여운을 남기지만, 시각적 디테일만큼 단단하지 못한 스토리는 이미지의 위용에 압도당한 채 빛을 내지 못한다.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지용진 기자): 비주얼리스트 델 토로의 독창적인 판타지. 매혹적인 이미지에 비해 이야기는 다소 약하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 고딕의 강박과 매혹. 델 토로는 언제나, 영화는 ‘눈’으로 본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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