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87년 괴한들 당사 급습 때 도망치다 국밥집 솥에 빠질 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기사 이미지

1987년 4월 창당 작업에 반대하는 150여 명의 청년들이 난입해 당원들을 폭행하고 불을 지른 통일 민주당 인천 지구당의 모습. [중앙포토]

24일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 빈소에선 YS가 과거 펼쳤던 ‘활극’에 가까운 스토리가 화제에 올랐다. 1987년 초 서울 안국동 신한민주당(신민당) 당사에 있던 YS를 테러하기 위해 괴청년들이 몰려들었는데 YS가 목숨을 걸고 탈출한 사연이다. 당시 YS는 정부의 내각제 개헌을 지지하려는 신민당을 떠나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준비 중이었는데, 이를 방해하려는 세력은 괴청년들을 동원했다.

당사 3층서 뛰어내려 지붕 위 도주
김수한 “그 뒤 용팔이 사건 이어져”
‘용팔이’ 김용남씨도 빈소 찾아

 당시 현장에 있었던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이날 오전 빈소에 조문객이 뜸한 사이에 이야기를 꺼냈다. “당사 3층에 YS랑 나랑 이충환 부총재랑 있는데 김동영(전 의원)이가 뛰어 올라와 ‘누군가 몰려온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다보니까 정말 당사 주변에 새까맣게 몰려들었어. 셔터를 내려 문을 막으니까 그 자들이 사다리까지 타고 기어오르더라고. 그래서 ‘아! 오늘 맞아 죽겠구나’ 하고 있는데 YS는 역시 보통이 아냐. 3층 조그만 문간방 창문을 확 열더니 그냥 뛰어내리더라고. 그래서 종로경찰서 쪽으로 기와집 지붕을 타고 뛰었어. 나도 빠른데 YS가 막대기 하나 주워 들고 뛰는데 정말 빠릅디다. 그런데 그러다가 경찰서 거의 다 와서 YS가 발을 헛디뎠어. 그래서 그만 국밥집 마당으로 떨어졌지. 이게 다 나중에 용팔이 사건으로 이어진 겁니다.”

기사 이미지

‘용팔이’ 김용남

 김 전 의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당시 YS는 펄펄 끓는 국솥에 떨어질 뻔했다. YS가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라고 했다. 정치폭력 때문에 문민정부의 탄생이 어려워질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 있었단 얘기였다.

 어렵게 화를 면한 YS는 통일민주당 창당을 강행했다. 이후 지구당 20여 곳에 폭력배들이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고 당 관계자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폭행사건의 주동자 김용남씨의 별명이 ‘용팔이’였기 때문에 훗날 이 사건은 ‘용팔이 사건’으로 통하게 됐다.

결국 안국동에서 YS가 벌인 구사일생의 활극은 ‘용팔이 사건’의 전초전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목사로 변신한 ‘용팔이 사건’의 주동자 김씨(65)도 이날 오후 4시쯤 빈소를 다녀갔다. 김씨를 직접 맞은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은 "조문을 길게 하진 않았고 기도하고 묵념을 오래했다”며 "‘저 목사 됐어요’하고 휙 가버렸다”고 말했다. 빈소 관계자들 사이에선 “YS가 ‘통합과 화합’을 이야기하셨는데 그런 측면에서 참 재미있는 장면”이란 얘기가 나왔다.

 88년 검찰은 ‘용팔이 사건’의 배후가 신민당 내부의 창당 반대 세력이라고만 결론 내리고 서둘러 사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YS가 대통령이 된 뒤인 93년 이 사건은 재조사됐고 결국 당시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신민당 내부 창당 반대파에 폭력배 동원 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경희·박병현 기자 amato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