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김장문화 전파하는 ‘김치 전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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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에서 김장 행사를 연안명자(오른쪽)씨와 남경필 경기지사. [장대석 기자]

22일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 고마신사(高麗神社).

전주 ‘신뱅이 김치’ 명인 안명자씨
8년째 히다카시에서 김장 축제

 고구려 유민들이 1300여 년 전 건립한 신사 뒷마당에 일본인 150여 명이 모였다. 도쿄·오사카·센다이 등 각지에서 몰려온 이들은 오전 10시부터 무·파·당근 등 야채를 썰고 다듬었다. 고춧가루와 버무려 양념 소를 만들고 배추 잎 사이에 골고루 버무렸다. 그렇게 갓 담은 배추김치를 입에 넣어 본 참가자들은 “오이시이(맛있다)”를 연발했다. 기쿠치 아키코(70·여)는 “몇 년 전 한국 김치를 맛본 뒤 깊고 개운한 맛에 반했다”며 “유산균이 발효돼 몸에 좋다고 해서 며느리와 딸까지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전북 전주에서 온 안명자(59)씨가 주최했다. 올해로 8년째 히다카에서 ‘김장 마쓰리(김장 축제)’를 열고 있다. 축제 하루 전 배추를 절이고 찹쌀가루 풀을 써 양념을 버무리는 등 전통적인 김장 담그는 절차를 그대로 재현한다. 김치 맛을 결정하는 젓갈과 고춧가루·소금 등은 직접 전주에서 가져온다. 배추와 각종 야채는 참가자들이 5000엔(약 4만7000원)씩 내는 돈으로 현지에서 구입한다.

 안씨가 이 행사를 시작한 것은 2008년. 일본의 한 식품회사가 한국의 김치 명인을 수소문한 끝에 그를 찾아온 게 계기가 됐다. 안씨는 20여 년 전부터 전주 모악산 자락에서 주민들과 함께 ‘신뱅이 김치’를 만들어오던 중이었다. ‘신뱅이’는 그가 사는 동네 이름이다.

 “처음엔 일본 식품업체 홍보 차원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가 문을 닫았어요. 하지만 ‘우리 김치를 제대로 알려야 된다’는 생각에 그만둘 수가 없었죠.”

 별다른 지원 없이 안씨 혼자 뛰었지만 차츰 성과가 나타났다. 김장 마쓰리에 다녀간 일본인들이 이웃을 모아 한국식 김치 담기를 하는 등 홍보에 나섰다. 매년 단체로 전주에 ‘김장 투어’도 왔다. 안씨는 “우리 전통 식문화를 알리는 일이라면 유럽과 러시아도 찾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장 축제가 열린 히다카 고마신사는 716년 고구려 유민들이 건너와 세웠다고 한다. 일본 기록에 따르면 당시 왕족인 ‘잣코(若光)’를 비롯해 1799명이 건너왔다고 한다. 현재 신사의 궁주는 잣코의 60대손이다. 또 히다카에는 역과 하천·택시·학교 등에 고마(高麗)라는 명칭이 붙은 곳이 많아 ‘일본 속의 고려’로 통한다. 내년에는 고마신사 1300주년을 맞아 퍼레이드와 활쏘기 대회 등 각종 기념행사가 펼쳐진다.

히다카=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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