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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는 한국을 잊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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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준현
김준현 기자 중앙일보 팀장 겸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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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경제부문 기자

제 이름은 손정의. 재일동포 3세로, 일본에선 손 마사요시로 불립니다. 소프트뱅크란 회사의 회장이죠. 사람들이 저를 아시아의 ‘워런 버핏’이라고 부르더군요. 미국 야후, 중국 알리바바 등에 투자한 게 대박이 나서 그런가 봅니다. 지금도 세계 각지의 스타트업(신생기업)이나 성장기업들을 눈여겨보고 있지요. 특히 일본을 비롯해 미국·중국·인도 기업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한국 기업은 어떠냐고요? 솔직히 말해서 큰 관심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됐네요. 요즘 한국에선 창업 열풍이 분다고 하지만 투자하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기업은 드뭅니다. 세계적인 기술 트렌드인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로봇 분야에선 더욱 그렇고요.

 2000년대 초 소프트뱅크의 사장단을 이끌고 한국에 와 PC방 투어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수준은 세계 최고였고, 그걸 활용한 PC방 비즈니스는 꽤 도전적으로 보였죠. 실패해도 도전한다는 벤처정신과 열정도 최고였다고 기억합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허둥대고 있는 듯합니다. 저는 종종 “다음 시대를 먼저 읽고 시대가 쫓아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혹 한국은 인터넷 속도가 빠른 걸 정보기술(IT)이 강한 것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삼성전자가 소니를 제쳤다는 뉴스에 도취됐던 건 아닌지, 그래서 다가올 미래를 읽어내지 못한 건 아닌지.

 정말로 걱정인 건 한국 기업에서 열정을 느낄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 인생 목표는 돈이 아닙니다. 높은 뜻을 가지고(志し高く), 다른 이에게 가치 있는 일을 해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폐렴에 걸린 줄도, 결혼식 시간이 다 된 것도 모를 정도로 몰두했습니다.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이런 열정, 한국의 기업인들에겐 체화돼 있던 것 아닙니까. 그들의 열정 덕분에 기적이 만들어졌던 것 아니었나요. 그러나 이젠 잘 보이지 않습니다. 틀에 박힌 교육을 받고 자란 청년들에게 도전과 창조는 몸에 맞지 않는 옷입니다. 오히려 안정을 버리고 도전하는 이들을 바보 취급하고 있지는 않나요. 거품이 다 꺼져버린 생크림 같습니다. 돈 주고 사기엔 아까운. 제게 한국의 기업은 그렇게 보입니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자신의 한계는 포기하고 싶은 자신의 마음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이상 한계는 없는 것이니까요. 대한민국의 열정이 다시 불 지펴지길 응원합니다.

 ※이 글은 허구입니다. “우리 경제의 문제가 뭔가”란 질문에 대한 손 회장의 답변을 그가 살아온 과거, 그가 했던 말 등을 토대로 꾸며본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손정의 회장의 관심 목록에서 한국이 지워진 것 같다”는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관계자의 말이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왜 한국을 지웠을까요. 다시 되돌리려면 어떻게 하면 될지 그는 해법을 알까요. 어쩌면 우리 스스로 그 해법을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뿐.

김준현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