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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미국 한인들은 왜 교과서 투쟁을 했을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ast Sea’ 한 단어 넣으려 7년을 싸웠다”
홍일송 전 버지니아주 한인회장 인터뷰

한국은 지금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시끄럽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다른 이유로 교과서 투쟁이 벌어졌다.

“자국의 교과서가 바뀌면 정치인들도 따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난해 미국 버지니아주 공립 교과서에 ‘동해(East Sea)’를 넣는 데 성공한 홍일송(52) 전 버지니아주 한인회장이 ‘교과서 투쟁’의 배경을 설명했다. 세계 바다의 명칭을 정하는 국제수로기구(IHO)를 움직이려면 미국 같은 선진국의 힘이 필요하고, 미 연방정부를 설득하려면 정치인들이 표준으로 삼는 교과서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난 4일 서울 상암동에서 TONG기자단과 만난 홍 전 회장은 한인회를 4년간 이끌며 동해 병기 법안을 통과시킨 과정을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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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병기’란 ‘일본해(Sea of Japan)’로만 된 있는 지도에 ‘동해’를 나란히 표기하는 걸 말한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은 IHO가 1929년 첫 총회에서 결정한 대로 ‘일본해’를 단독 표기해 왔다.“버지니아는 미국 50개 주의 하나이지만 여기서 동해 병기를 의무화하면 미국 출판사들이 이 교과서를 다른 주에도 공급할 수 있어 파급력이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주 의회가 교과서 내용을 바꿀 수는 있지만, 버지니아 250년 역사상 단 한 번도 실제로 바꾼 적은 없다는 거예요.”

홍 전 회장은 미국이 이민사회인 만큼 이 법안의 통과로 전 세계 지역 분쟁이 다 몰려올 것이라는 주 의회의 우려가 큰 걸림돌이었다고 회고했다. ‘판도라의 상자’라는 반대 의견에 그는 역사 왜곡을 바로 잡는 ‘진실의 문(gate of truth)’이라고 응수했다.

교과서를 통해 ‘새 역사’를 쓰려는 한인들의 운동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버지니아주 교과서 동해 병기 법안은 상·하원 각각 본회의와 교육소위원회, 상임위원회에 주지사 서명까지 모두 7단계를 거쳐야 했다. 지난해 초 버지니아주 의회 교육소위 표결 당시 우리 측 지지 의원이 불참해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루 표결 연기를 겨우 얻어 해당 의원을 한인들이 밀착 경호(?)한 결과 이튿날 5 대 4로 통과시켰다.

상원 전체회의 때는 의원 40명의 보좌관실에 1000통이 넘는 전화를 걸었다. 이메일 서명 운동을 하면 일본 본토(미국 내 일본인은 동해 병기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다)에서 알바를 고용하지만 영어로 하는 국제전화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비밀리에 진행했다.

2012년 임진년에는 ‘420년 전 이순신 장군이 남해를 지켰다면 이제 미주 동포가 동해를 되찾아 애국가를 편하게 부르자’는 신년사를 발표해 동포들을 독려했다. 지난 2007년 미 연방의회의 위안부 결의안 때부터 한인들을 결속시켜 온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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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인들을 만나서는 “한국을 독립시켜 줘 고맙지만 ‘명패’가 따라오지 않았다”며 일제 강제합병으로 인해 동해 명칭을 빼앗겼음을 강조했다. 19세기까지는 국내외 지도에 ‘조선해’나 ‘동해’가 나왔지만 식민 침략이 바다 이름까지 빼앗았다는 것이다.“동해 표기는 독도를 수호하는 데도 꼭 필요합니다. 일본인들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독도가 일본해에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펴거든요.”

일본해로 표기법을 통일시킨 1929년 IHO 총회가 열렸던 모나코에서 2017년 4월, 88년 만에 다시 총회가 열린다. 동해 단독 표기가 궁극적 목표지만, 당장은 2017 모나코 회의에서 동해를 병기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다. ‘타 이민자들과 달리 왜 유독 한인들은 고국의 일에 적극 뛰어드느냐’는 질문에 홍 전 회장은 “떠나서도 고국을 그리워하는 한국인의 원형 DNA가 있다”고 답했다.

“학창 시절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국사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미국이 독립한 1776년, 정조가 당시로선 최첨단 과학의 집결이었던 화성을 쌓는 걸 보고 자부심을 느꼈죠. 자신의 뿌리인 역사를 알아야 내가 가야 할 좌표를 알 수 있답니다.”

<미 버지니아주 교과서 동해 병기 약사>
2007년 미국 워싱턴DC 동해연구포럼 참석자 “공립 교과서에 일본해만 있어 충격”이라며 데이브 마스덴 주 상원의원 찾아가 동해 병기 부탁
2011년 8월 미 연방정부 ‘일본해 단독 표기 인정’ 발표하자 한인단체 서명운동.
2012년 3월 백악관 민원 사이트 ‘We the people’에 동해 병기 청원. 국내외 한인 10만 명 동참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 백악관 홈페이지 멈춤
2012년 버지니아주 공립 교과서에 동해 병기 의무화하는 법안, 의회 소위원회 8:7로 부결
2014년 2월 버지니아주 의회 3분의 2 이상으로 최종 통과해 주지사 거부권 행사 않고 서명
2014년 7월 버지니아 초·중·고 학생 130만 명이 ‘동해’가 기록된 교과서로 학습

<홍일송 전 회장이 걸어온 길>
중학교 졸업 후 가족이 이민. 1985년 워싱턴 지역 한인 총학생회장 맡음
2007년 미 하원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등 미국 내 공공 민간 외교 주도
2011~14년 버지니아 한인회장 역임하며 미주 동해 병기 추진위원장
2014년 11월 30일 페어팩스 카운티 ‘홍일송의 날’ 지정
2015년 국내 중·고교 역사 바로세우기 순회 강연
2015년 6월 (사)영토지킴이 독도사랑회 미주 총연합회장 임명
글=윤현지(무학여고 1) TONG청소년기자, 청소년사회문제연구소 왕십리지부
도움=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

‘TONG 우리 역사 바로 알기 캠페인’-문화재청·문화유산국민신탁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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