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개헌론은 투명하고 질서 있게 논의되는 것이 옳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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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권의 주류세력인 친박근혜계가 개헌론의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다.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이 그제 “이원집정부제, 외치(外治)를 하는 대통령과 내치(內治)를 하는 총리, 이렇게 하는 것이 현재의 5년제 단임 대통령제보다 정책의 일관성도 있고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기문 대통령, 친박 총리’ 시나리오에 대한 질문에도 “가능성이 있는 얘기”라고 박자를 맞췄다. 친박계는 지난해 김무성 대표의 ‘상하이 개헌 발언’이 나왔을 때 한목소리로 비난을 퍼부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개헌논의는 경제의 블랙홀”이라며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그랬던 친박계가 20대 총선을 5개월 앞둔 시점에, 느닷없이 개헌론의 군불을 때고 있으니 의아할 따름이다.

 친박계는 “홍 의원 개인의견일 뿐 개헌론으로 부풀리는 건 사실과 다른 공상”(윤상현 의원)이라며 불 끄기에 나섰다. 하지만 파장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개헌론 자체가 갖는 정치적 휘발성 때문이다. 당장 비박계와 야당은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장기집권 음모”라거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경제 실패의 논란을 덮기 위한 꼼수”라며 반발하고 있다. 개헌 구상이 ‘반기문 대망론’과 맞물리면서 박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다듬고 있다는 소문도 꼬리를 물고 있다. ‘TK(대구·경북) 물갈이’ 논란에 이어 “진실한 후보를 선택해 달라”는 ‘국민 심판’ 발언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대통령의 최측근이 분권형 개헌론을 들고 나오니 이런 의심을 사는 것이다. 청와대가 즉답을 피한 채 “경제살리기와 민생경제에 집중하겠다”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내놓은 것도 억측과 혼란을 더하고 있다.

 우리는 줄곧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5년 단임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의 ‘1987년 헌법체제’로는 다원화하는 사회적 요구를 담아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국가 개조 수준의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 운영의 근본 틀을 바꾸는 개헌논의는 모든 정파와 사회 각 세력들이 동참하는 가운데 국민적 공감대 속에 차분하고 질서 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특정 정파의 유불리를 계산한 정략적 접근이나 일부에서 의심하는 것처럼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판 확보를 노린 논의라면 혼란만 부추길 뿐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여론은 광범위하게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역대 정권에서도 정치적 꼼수로 추진된 개헌 논의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 만큼 집권세력이 정말로 나라의 큰 틀을 바꿀 생각이라면 국회 정개특위 같은 공식 테이블에 올려놓고 질서 있게 개헌논의를 이끌어가는 게 옳다. ‘내년 총선 공약으로 제시하라’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주장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