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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커피 마시러 가는 시간도 아깝다” 프리미엄 독서실 입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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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 잠실동 크라스플러스독서실 내 휴게실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이런 프리미엄 독서실은 기존 업체보다 월 5만~10만원 비싸지만 편리함ㆍ공부몰입도 때문에 인기다. [사진 레인보우]

중앙일보 1966년 4월 19일자 독자투고란에 이런 글이 실렸다.

“요즘 (서울) 시내 여러곳에 사설 독서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소시민 가정에는 학생들을 위한 아늑한 공부방이 없는 실정이고, 공설 도서관이 많은 학생의 수요를 충족시키지도 못한다. 자기 책을 읽는 장소를 제공하는 독서실에는 입시ㆍ고시 공부를 하는 열성파도 있지만 잡담ㆍ장난으로 나날을 보내는 학생도 많다.”

공부하라고 만들어 놓은 독서실에서 엉뚱한 짓 하는 자녀 때문에 속 상하긴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당시엔 잡담과 장난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스마트폰 게임이나 모바일 메신저가 공부 흐름을 깬다.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를 찾아 아예 독서실을 떠나 카페에서 공부하는 청소년이나 대학생도 많다.

그래서 독서실이 변했다. 독서실을 떠나는 이들을 잡기 위한 몸부림이다. 고급 커피숍처럼 쉬면서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밥도 먹을 수 있고, 휴식도 취할 수 있다. 독서실 밖으로 나갈 필요를 없애 딴짓에 들일 시간을 원천적으로 없앤 셈이다. 물론 독서실로서의 본질, 조용하게 공부하는 공간으로서의 특징은 유지했다. 스터디그룹이나 과외 등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까지 있어, 한 곳에서 학습과 휴식 모두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요즘 입소문을 타고 있는 프리미엄 독서실은 카페와 휴게실, 스터디그룹, 학원 강의실 등의 기능을 하나로 합치고 인테리어를 고급 카페처럼 꾸민 ‘올인원’ 형태다. 자녀들이 공부에만 집중하기를 바라는 학부형의 요구는 물론, 편안한 공간에서 공부와 휴식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학생들의 마음도 충족시켰다. 각종 기능을 모은 까닭에 직장인들도 프리미엄을 독서실을 찾기 시작했다.

수능을 앞둔 지난 7일 서울 잠실동 크라스플러스독서실에는 막바지 마무리 공부에 집중하는 고교생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카페처럼 생긴 공간에는 넓직한 책상에서 토의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고, 기존의 독서실처럼 칸막이를 친 공간에서 혼자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올해 수능에 응시한 김지수(18ㆍ한영외고3)양도 그 중 하나다. 김양은 올해 8월부터 이 독서실에 다녔다. 그는 “스터디룸과 독서실, 커피숍이 모두 한 곳에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면서 “카페에서 잠깐 커피를 마시고 바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변화의 단초는 ‘딴짓’이라는 요소에 있었다. 크라스플러스독서실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레인보우의 우승우 대표는 “기존의 독서실은 학생들이 커피 마시러 들락날락하고, 밥먹으러 나가면 함흥차사인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본인 스스로도 1990년대 사법시험을 10여년 준비하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는 우 대표는 어떻게 하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크라스플러스독서실을 창업하게 됐다. 2010년 개인사업자로 창업한 독서실이 입소문을 타면서 법인화한 것이다. 현재 15곳의 가맹점이 있다.

하지만 규제의 장벽이 있었다. 현행법상 독서실업은 교육청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각 시설의 정확한 도면이나 시공 여부에 대해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구내식당을 설치하거나 휴게시설을 설치하는 것 역시 교육청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이를 정면돌파한 것이 ‘복수 사업자 등록’이다. 크라스플러스독서실은 내부를 두 곳으로 나눠 한 곳은 독서실로 교육청의 인가를 받고, 같은 층에 ‘바로 옆 집’에 있는 커피숍 및 휴게공간에 대해서는 휴게음식점으로 구청에 등록했다. 커피숍 공간에서는 샌드위치 등 간단한 요기거리와 커피ㆍ탄산수 등 음료를 판매한다. 그 덕분에 학생들은 따로 음료를 마시러 나가거나 식당에 가지 않고 독서실에 머물 수 있게 됐다. 일부 학생들은 밥먹는 시간을 아끼려고 휴게실에도 책을 갖고 와서 보면서 먹기도 한다.

내부 인테리어에는 고급스러움과 선택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더했다. 우선 크라스플러스독서실은 병원이나 브랜드 커피숍같은 고급스러운 자재와 디자인을 적용했다. 이곳에서는 자신이 공부하는 스타일에 맞게 좌석을 선택할 수도 있다. 혼자 독립적인 공간을 원하면 기존의 독서실 좌석을 개조한 단독형 좌석을 사용할 수 있고, 스터디 그룹이나 과외 선생님과의 수업 등을 하려면 스터디룸을 쓸 수 있다. 넓직한 공간에서 토의형 공부를 하고 싶을 때에는 전용 책상이 따로 있다.

국내에 있는 독서실은 약 1만4800곳(인가 독서실 4800곳, 미인가 1만곳), 시장 규모는 약 1000억원대다. 이 중에서 약 300여곳이 프리미엄 독서실로 변화했다. 프리미엄 독서실 업계에는 아카데미라운지, 스터디뱅크, 어썸팩토리, 그린램프 등의 체인이 있다. 100여곳의 가맹점을 두고 있는 토즈는 본래 스터디그룹 공간 전문업체로 출발했다가 2010년부터 프리미엄 독서실 가맹 사업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프리미엄 독서실 가맹본부에는 서울은 물론 부산ㆍ대구ㆍ대전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신규 독서실 개설 또는 기존 독서실의 리뉴얼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대개 1곳의 프리미엄 독서실을 여는데에는 265㎡(약 80평) 기준으로 약 2억9000만원 정도 투자비가 소요된다.

전문가들은 프리미엄 독서실이 고교생은 물론 자격증ㆍ평생교육 등을 진행하는 성인의 수요까지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윤환 토즈 대표는 “사교육 특구라 불리는 서울 대치동, 목동 등을 중심으로 서울 전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 “5년 내 전국 독서실 시장의 10%(480곳)까지 프리미엄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미엄 독서실이 입소문을 타면서 그동안 대학생층을 중심으로 스터디그룹과 1인 스터디족(族) 고객을 독식해왔던 커피숍들도 새로운 전략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카페베네는 최근 신규 론칭한 ‘베이글 전문 매장’에 학습 시설을 보강했다. 4~5명이 들어갈 수 있는 미팅룸을 설치하는 한편, 혼자 와서 공부하는 1인 스터디족 전용 좌석을 만들었다. 1인용 책상에 의자가 있고, 팔걸이ㆍ컵홀더가 있어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거나 책을 보면서 공부하기 편하다. 드롭탑은 아예 250개 전 매장(휴게소 등 특수점포 제외)에 스터디그룹이나 공모전 준비 등을 할 수 있는 북카페를 설치했다.

스터디룸이 있는 커피숍들은 추가 기능이나 서비스로 차별화를 꾀했다. 커핀그루나루는 미팅룸에 설치된 유리벽을 칠판처럼 사용할 수 있는 ‘유리보드’로 만들었다. 삼삼오오 모인 대학생들이 유리보드에 마카로 써가면서 회의를 할 수 있다. 할리스는 서울대 음대 내에 ‘서울대예술문화점 크리에이터스 라운지’를 만들었다. 이동식 가구와 무빙 월이 있어 모임의 규모와 목적에 따라 가구 배치를 해서 사용할 수 있는 커피숍 형태다. 공차코리아는 전남대점에 6석, 8석, 10석 등 스터디그룹 인원별로 앉을 수 있는 좌석을 마련했다. 윤재희 커핀그루나루 대리는 “소비자 조사 결과 커피만큼이나 (공부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신경써 달라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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