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수사 제자리걸음, 일손 못 잡는 삼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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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단은 매년 11월말이면 이듬해 전력구성을 마무리한다. 올해는 오는 18일 자유계약선수(FA) 명단이 공시되고, 27일엔 2차 드래프트(다른 팀 보호선수 40명 외의 선수를 최대 3명 뽑는 것)를 실시한다. 구단은 보류선수(연봉계약 대상 63명)를 정해 30일 공시한다. 보류선수 명단에서 빠지면 선수 자격을 잃는 셈이다. 11월은 야구단이 내년도 사업계획서를 만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올해 정규리그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의 업무는 마비 상태다. '마카오 원정도박' 파문 때문이다.

삼성 구단은 도박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선수 3명을 내년 전력에 포함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심 중이다. 안현호 삼성 라이온즈 단장은 "일부 선수들이 도박 혐의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 드린다. 혐의가 입증되면 해당 선수를 일벌백계할 것이다.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 수사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한국시리즈 이후 해당 선수들을 소환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한국시리즈가 끝난 지 2주가 지났지만 소환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삼성은 단호한 징계 의지를 보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일부 삼성 선수들의 불법도박 의혹이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진 게 지난달 15일이었다. 수억원의 판돈이 오간 데다 조직폭력배까지 연계됐다는 보도는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김인 삼성 라이온즈 사장은 닷새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의혹을 받는 선수 3명을 한국시리즈 명단에서 제외하겠다. 혐의가 드러나면 내규에 따라 징계할 것"이라고 했다. '도박 파문' 1라운드는 이렇게 끝났다.

당시 김 사장은 도박 혐의를 받는 3명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결국 한국시리즈 엔트리를 제출할 때 마무리 임창용(39, 구원 1위), 셋업맨 안지만(32, 홀드 1위), 선발투수 윤성환(34, 다승 3위)이 그들이라는 게 밝혀졌다. 임창용은 경찰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았지만 일부 보도에서 의혹이 제기된 것만으로 한국시리즈 명단에서 제외됐다. 핵심 투수 3명을 빼고 치른 경기에서 삼성은 두산에 완패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수사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5일 경찰은 "두 선수의 계좌 및 통신 내역을 추적하고 있다. 두 선수가 환치기 수법으로 도박자금을 조달했을 가능성도 조사 중"이라고 했다. 아울러 윤성환은 불법도박으로 13억원을 땄다가 오히려 협박을 당했다는 말도 나왔다. 선수들은 이미 범법자 취급을 받았다.

최근 증권가 사설 정보지를 통해 '삼성 구단이 세 선수를 임의탈퇴(사실상 은퇴) 시키기로 내부 방침을 세웠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에 대해 삼성 라이온즈는 "기소도 되지 않은 선수들을 한국시리즈에서 제외한 것만으로도 구단은 최고의 징계를 내렸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했다"며 "현 상황에서 임의탈퇴를 거론하는 게 말이 되느냐. 선수들의 인권도 생각해 달라"며 반박했다. 정보지에는 다른 구단 선수들도 불법도박을 했다는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담겨 있다. 삼성 선수 3명은 프로야구의 위상을 떨어뜨린 장본인이 됐다. 이들은 프리미어12 명단에서도 빠져 대표팀 전력구성에 큰 차질을 빚었다.

삼성 선수들에 대한 수사는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도박 파문' 2라운드는 시작도 끝도 명확하지 않다. 선수들은 계속 여론 재판만 받고, 구단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용배 단국대(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도박파문으로 선수들은 이미 죄인이 됐다. 구단은 물론 프로야구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도 수사가 늦어지는 걸 납득하기 어렵다"며 "죄가 있다면 선수는 죗값을 치르고, 구단은 책임을 지면 된다"고 말했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