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렌즈, 셀카봉 시대 끝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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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없어도 단체 사진, ‘백’ 대신에 주머니 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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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카렌즈를 쓰면 스마트폰 카메라의 촬영 각도가 넓어져 한 화면에 더 많은 사람이 들어온다. 위 사진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다. 기자(가운데)를 포함해 3명이 찍혔다. 아래 사진은 0.4 배율의 셀카렌즈를 스마트폰에 부착하고 같은 거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5명이 한 화면에 들어왔다.


좌우 넓게 찍혀 “10명까지 한 화면에”
가벼운 데다 저렴한 건 몇천원이면 사
아예 광각 렌즈 넣은 스마트폰도 나와

셀카봉에 이어 셀카렌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엄지손가락 크기의 셀카렌즈를 스마트폰에 부착하면 카메라의 시야를 넓히거나, 사물이 더 가까워 보인다. 그냥 찍으면 밋밋한 셀카 사진이 훨씬 더 멋있게 보인다. 지난 6개월간 온라인 쇼핑몰 G마켓의 셀카렌즈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15배 늘었다. 같은 기간 셀카봉을 포함한 전체 스마트폰 액세서리 판매량은 20% 늘었다. 옥션도 같은 기간 판매량이 약 81배 증가했다. 옥션 관계자는 “셀카봉은 길고 두툼한 데다 스마트폰을 거치대에 끼워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고객들이 셀카렌즈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집게로 스마트폰에 고정하고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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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패스아이 셀카렌즈

직장인 김모씨(여·31)는 최근 수십만원에 달하는 DSLR 카메라를 구입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대신 5만5000원짜리 셀카렌즈를 구입했다. 고성능 카메라 못지않게 촬영할 수 있는 시야가 넓고 화질까지 선명했다. 김씨는 “굳이 비싼 돈 들여 카메라를 구입하는 것보다 손쉽게 휴대 가능한 셀카렌즈가 낫다. 특히 여행을 갈 때 주머니에 쏙 넣고 다닐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셀카렌즈는 렌즈와 이 렌즈를 스마트폰에 고정 시키는 집게로 구성돼 있다. 둥근 렌즈를 스마트폰 카메라 위쪽에 대고 집게로 고정한 채 촬영하면 된다. 렌즈를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카메라의 초점을 잡을수 있는 제품도 있다. 전방 카메라에 렌즈를 부착하면 셀카를 찍을 수 있고 후방 카메라에 부착하면 먼 거리의 풍경을 담을 수 있다. 애플 아이폰, 삼성 갤럭시S 등 카메라 렌즈를 갖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모두 쓸 수 있다. IT상품업체인 삼지아이티의 최지훈 영업팀장은 “전면 후면을 모두 촬영할 수 있어 실용성이 높다. 출시 초기에 셀카를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을 타다 보니 ‘셀카렌즈’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중에서 인기가 높은 셀카렌즈는 피스넷 멀티코팅 셀카렌즈(1만7000원), 써패스아이 셀카렌즈(5만5000원·정가 기준) 등이다. 가격대는 제각각 다르다. 셀카렌즈업체인 써패스아이의 박정준 대표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각도 차이에 따라 생기는 비네팅(화면 테두리가 어둡게 보이는 현상) 크기, 셀카렌즈의 코팅 여부, 내구성, 화질 등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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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카렌즈는 망원렌즈(왼쪽), 현미경렌즈(오른쪽) 등 용도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넓게 보이는 광각렌즈 가장 잘 팔려

사용 용도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다. 시야를 확대하는 광각(廣角)렌즈, 사물을 가깝게 보이게 하는 접사(接寫)렌즈, 먼 풍경을 볼 수 있는 망원(望遠)렌즈 등이 있다. 최근에는 접사 기능까지 있는 광각렌즈가 출시됐다. 최지훈 삼지아이티 팀장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셀카렌즈는 기본적으로 광각 기능을 갖춘 렌즈가 상당수”라며 “멀리 볼 수 있는 망원렌즈는 실용성이 적어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진다”고 귀띔했다.

광각렌즈는 카메라 렌즈가 보는 시야를 넓히기 때문에 단체로 사진을 찍는데 적합하다. 직장인 김기봉(25)씨는 “여러 명이 단체로 셀카를 찍을 때면 스마트폰을 쥔 손을 뻗어도 모두를 카메라 화면에 담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셀카렌즈를 활용하면 옆으로 촬영 각도가 넓어지니 10명까지 한 화면에 담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셀카봉의 장점은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와 찍으려는 피사체의 거리가 멀어져 자연스레 촬영 각도가 넓어진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꽤 크고 무거운 셀카봉을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또 셀카봉으로 셀카를 찍다가 스마트폰 거치대에서 스마트폰이 빠지는 바람에 액정이 깨지는 경우도 있다.

셀카렌즈를 구입하는 고객 상당수는 20~30대 대학생과 직장인이다. 지난 3일 종로구 동숭동의 한 생활용품 매장에서 만난 20대 직원은 “여름·겨울철에 친구와 여행을 앞둔 젊은 여성이 많이 구매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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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카 기능 강화하는 스마트폰 업계

한국에 셀카가 유행하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컴퓨터 본체에 연결한 웹캠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거나, 상대방과 실시간 동영상 채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두리’가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턱을 비스듬히 숙이고 찍는 ‘얼짱 각도’가 유행을 탄 것도 이쯤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확산하면서 셀카를 찍는 사람이 늘었다. 캐논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셀카를 찍고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에 올리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계속 늘고 있다. 기존 카메라 기업에서도 셀카 기능을 더욱 강화 시키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전문적인 사진을 찍는 이들은 계속 늘고 있다. 아이포노그래피(iphonography)는 ‘아이폰으로 예술사진을 찍는다’는 뜻의 신조어로 아이폰(iphone)과 사진 기술을 뜻하는 포토그래피(photography)의 합성어다. 한 카메라업계 관계자는 “더 멋진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셀카봉이나 셀카렌즈 같은 기기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스마트폰에 아예 접사·광각·망원렌즈 기능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LG전자는 스마트폰의 기존 화각(카메라로 포착하는 장면의 시야)인 80도 렌즈와 120도의 광각렌즈를 동시에 부착한 ‘듀얼렌즈’ 방식의 V10 스마트폰 시리즈를 지난달 출시했다. 삼성전기도 올해 초 실적설명회(IR)에서 “광각렌즈를 탑재한 스마트폰용 전면 카메라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포스트 스마트폰 경계의 붕괴』를 쓴 김지현 카이스트 정보미디어 경영대학원 겸직교수는 “스마트폰의 소프트웨어 기능(카메라)이 발달할수록 (셀카렌즈를 비롯한) 액세서리 시장 규모는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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