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2000년 한반도 2015년 양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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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사상 첫 양안 정상회담의 현장인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기자는 15년 전의 서울 롯데호텔을 떠올렸다. 분단 55년 만에 성사된 남북 정상회담으로 전세계 언론의 이목은 한반도로 쏠렸고, 회담장인 평양에 갈 수 없었던 내외신기자들은 롯데호텔에 설치된 임시 프레스센터에서 대형 TV로 중계 화면을 보며 기사를 송고했다.

반세기 만의 악수 나눴지만
남북관계는 오히려 후퇴해
시·마 회담도 아쉬움 남는 이유

 평양 순안공항에 내린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두 손을 맞잡는 장면이 나오자 프레스센터의 기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기립 박수를 보냈다. 한 외신 기자가 화면을 응시하며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만큼 6·15는 극적이고 감동적이었다. 한반도가 곧 통일이 될 걸로 예단했는지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는 외신 기자도 있었다.

 시마(習馬) 첫 대면의 순간을 기다리는 동안 기자는 마른 침을 삼켜가며 그때의 감동을 떠올렸다. 본회담에 앞서 ‘악수회’가 열린다는 예고를 받은 터였다. 중국 국영 CCTV의 기자에게 물었다. “혹시 두 정상이 포옹을 할까요?” “글쎄요, 중국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사이엔 담담하게 대하는 편이라….” 그러는 새 두 정상이 나타났다. 81초 동안의 긴 악수만으로도 이번 회담이 갖는 역사성을 표출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하지만 장내를 메운 600여 명의 기자들이 보인 반응은 2000년 6월 롯데호텔에서의 벅찬 감동엔 못미쳤다. 일순 탄성을 터뜨린 기자도 있었지만 눈물을 훙칠 만큼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 남북 왕래는 꿈도 못꾸던 한반도에 비해 지금의 양안 관계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으니 정상회담이 주는 상황반전의 묘미가 덜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아무래도 회담의 성사배경과 의도의 순수성에 대한 의구심에 있지 않나 싶다. 기자는 대만 총통선거를 두 달 앞두고 국민당에게 절대 불리한 판도를 역전시키기 위해 마련한 선거용 회담이란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회담이 국민당에 더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가기 전에 지우지 못할 ‘도장’을 확실히 찍어두자는 의도는 있었다고 본다. ‘하나의 중국’에 양안 정상이 합의했다는 도장을 말이다. 그게 역사의 순리이자 시대적 소명일지는 모르나, 문제는 이 합의가 대만 여론의 결집에 의한 것이 아니란 점에 있다. 자칫하면 양안 관계의 방향을 놓고 갈라져 있는 대만의 분열을 더 부추길 우려도 적지 않다.

 지금 남북관계는 15년 전의 6·15 공동성명 때보다 오히려 후퇴했다. 그 책임이 남쪽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6·15의 기반인 햇볕정책은 성공했다고 보기 힘들다. 국민적 합의를 얻는 데 실패했다는 점도 중요한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 이번 양안회담도 대만에선 반쪽의 지지를 얻는데 그쳤다. 66년 분단을 헤치고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 역사적 현장을 지켜본 감격보다 아쉬움이 더 길게 남는 이유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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