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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웅 부친 암살 해외 도피 → 민주화 투신 가택연금 중 노벨평화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아웅산 수지 여사는 군부독재 국가인 미얀마를 민주주의로 이끌기까지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그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얀마를 독립시킨 주역인 아버지 아웅산 장군과 복지부 장관 등을 지낸 어머니 킨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 ‘수지’는 ‘맑은 것을 모은다’는 뜻이다.

아웅산 수지 걸어온 길

 그가 두 살 때 아버지가 정적에 의해 암살되면서 시련이 시작됐다. 수지 여사는 미얀마를 떠나 해외로 도피했다. 1964년 영국 옥스퍼드대에 진학한 그는 영국인 마이클 아리스와 결혼했다. 행복했던 가정생활도 잠시였다. 88년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병간호를 위해 귀국했던 그는 조국에 부는 민주화 물결과 마주하게 된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 ‘8888(88년 8월 8일 시작)’ 운동을 강제 진압하는 군부를 목격한 그는 민주화 투사로 살기로 결심한다. 수지 여사는 야당세력을 결집해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창설했다. 이 과정에서 군사정부의 탄압을 받아 89년 첫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90년 미얀마 군사정부는 서방의 압력에 총선을 실시했다. 총선 당시 수지 여사는 피선거권을 박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끄는 NLD가 82%의 지지율로 압승했다. 그러나 군부는 결과에 불복한 채 오히려 NLD 당원을 대규모 투옥하고 탄압했다. 91년 수지 여사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가택연금 중이던 그를 대신해 시상식장엔 아들과 남편이 사진을 들고 참석했다. 수지 여사는 15년을 가택연금 상태로 지냈다. 2010년 11월 마침내 풀려난 그는 2012년 보궐선거에 출마해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수지 여사의 남편은 티베트학을 전공한 학자였으며 1999년 영국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수지 여사는 가택에 연금돼 있어 남편의 죽음을 함께하지 못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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