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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사이에 낀 한국, 아시아의 접착제 역할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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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시아 패러독스’인가 ‘아시아의 기적’인가.

[J글로벌-채텀하우스 포럼 2015] 첫 번째 세션 - 지역 안보의 과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일대일로
하나의 지역안보 제도로 통합을
북한에 실질적인 인센티브 줘야
중국·대만 회담, 전술적이란 느낌

 9일 신라호텔에서 진행된 J글로벌-채텀하우스 포럼 2015의 첫 세션인 ‘지역 안보의 과제’를 관통한 질문이다. 아시아 패러독스는 지역 내 국가 간 경제적 상호 의존도는 높아지는데도 정치외교적 갈등은 심화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첫 세션은 아시아 패러독스를 조감하고 이를 아시아의 기적으로 바꿀 구체적 방안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한국은 경제 파트너인 중국과 안보 동맹국인 미국 사이에서 딜레마를 안고 있다”며 “지역 내 힘의 분배 구조가 바뀌면서 미·중 간 전략적 균형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바버라 데믹 전 LA타임스 베이징지국장은 “미국이 전략적 (균형이 아닌) 순진함으로 일관하는 반면 중국은 ‘우리를 멈출 수 없다’는 강경파가 다수”라며 “한국은 고래 싸움에 끼인 돌고래 같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게르하르트 사바틸 주한 유럽연합(EU) 대사는 한국과 같은 국가들이 “아시아의 접착제(glue)”로 기능해야 한다는 대안을 내놨다. 사바틸 대사는 핀란드가 1970년대 이후 헬싱키 프로세스를 통해 냉전시대 지역 내 대화의 장을 만들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탄생시키는 데 역할을 했던 점을 강조했다. 사바틸 대사는 “한국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나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등 아시아 각국이 주장하는 여러 이니셔티브를 묶어서 하나의 지역 안보 제도(institution)로 통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동북아에 다자 체제가 구축된다는 전제하에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아시아 패러독스란 말은 틀렸다. 이젠 아시아 기적의 시대”라며 “환경·인권 등 소프트 이슈를 다룰 수 있는 전혀 다른 다자주의 체제도 생각해 볼 만하다”고 발상의 전환을 제안했다.

 패러독스를 기적으로 바꾸는 길에 있어 복병으로 지목된 건 북한이다. 북한을 다루는 법을 논하면서는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NAPCI)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천 전 수석은 “6자회담도 넓게 보면 동북아식 다자주의인 NAPCI의 일환”이라며 “6자회담의 실패는 각국이 진정한 의지를 갖고 다자주의 체제에 임해야 함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천 전 수석은 이어 “이제는 실제적 액션 플랜이 필요하다”며 “북한에 대해 립서비스가 아닌 실질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북한 지도부가 변화한다”고 강조했다. 사바틸 대사는 “이 구상에 북한의 참여를 유도해 새로운 개념의 다자주의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며 “프랑스와 독일이 다자주의 체제 안에서 역사 교과서를 협의했듯 NAPCI라는 틀 속에서 한·일도 비슷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남중국해와 대만·중국 관계 등 지역 내 역학관계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데믹 전 지국장은 지난 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의 회담을 두고 “양안 정상회담은 전술적이고 차갑다는 느낌을 줬다”며 “내년 1월 대만 선거에서 마 총통의 국민당이 패배하면 중국과 대만 관계는 또 다른 갈등을 겪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천 전 수석은 남중국해 갈등과 관련, 필리핀이 중국을 상대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GA)에 제기한 영유권 분쟁의 최종 결정이 내년 6월 나올 예정임을 지적하며 “중국이 국제법을 준수할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채텀하우스(Chatham House)=외교·안보 분야 세계 최정상급 싱크탱크로 영국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의 애칭이다. ‘채텀하우스’는 연구소가 위치한 건물 이름이다. 지속 가능한 세계 평화와 번영 등을 위해 국제 현안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1926년 영국 왕실 칙령을 받아 왕립 싱크탱크로 거듭났다. 마하트마 간디, 윈스턴 처칠, 넬슨 만델라 등 세계적 지도자들이 채텀하우스에서 자신의 견해와 정책 구상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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