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만 독립" 민진당 겨냥한 시진핑·마잉주 '81초 악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70년 만에 열린 중국·대만 정상회담에서 만난 마잉주 대만 총통(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이들은 양안 정상회담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합의한 ‘92공식’을 재확인했다. [싱가포르 AP=뉴시스]

기사 이미지

사상 첫 양안 정상회담의 결론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재확인으로 요약된다. 13억 인구를 통치하는 잔여 임기 7년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7개월 뒤 2300만 인구의 대만 총통직에서 물러나는 마잉주(馬英九) 총통과 동등한 ‘선생’ 자격으로 만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마, 하나의 중국 ‘92공식’ 재확인
핫라인 설치, 후속 회담 여지 남겨
마잉주, 1500기 미사일 위협 언급
시 “대만 겨냥한 것 아니다” 비켜가
집권 유력 민진당 견제 나섰지만
이번 회담이 선거 영향 못 미칠 듯

 이는 모두발언에서 감지됐다. 시 주석은 ‘뼈를 잘라도 살은 붙어 있을(斷骨頭連着筋) 형제’로 양안관계를 표현했다. 마 총통은 양안관계 안정을 위한 다섯 가지 제언을 하면서 ‘92년 공통인식(약칭 92공식)’의 공고화를 꼽았다. 이는 ‘하나의 중국’을 양측이 인정하되 그 해석은 각자 편의대로 한다는 합의다. 두 정상은 81초간 손을 맞잡았다.

 중국에 92공식은 마지노선이다. 대만이 ‘하나의 중국’만 인정하면, 즉 분리 독립만 추구하지 않는다면 어떤 명칭을 사용하고 국제사회의 실체로 활동해도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뿌리를 중국 대륙에 둔 국민당도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지 오래인 대륙 복귀의 꿈에 매달리지 않고서도 92공식을 견지함으로써 중화민국, 즉 대만이 전체 중국을 대표한다는 명분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정상이 대만 총통 선거를 2개월 앞둔 시점에 만나 92공식을 재확인한 건 민진당과 대만독립론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시 주석은 민진당 집권으로 나타날지 모르는 독립 움직임을 사전에 견제하는 포석을 깔았다. 자신의 정치과제인 중화민족 부흥에 대만도 포함됨을 강조하며 민진당이 양안관계를 후퇴시키면 안 된다고 경고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민진당이 92공식을 부정하지만 않는다면 대만인들이 원하는 현상 유지가 가능하다는 암시를 던진 것이기도 하다.

 마 총통도 성과를 거뒀다. 8년 임기 내내 추구한 양안관계 개선에 화룡점정을 찍고 자신의 업적으로 굳히는 데 성공한 것이다. 또 내년 1월의 총통 선거에서 다른 이슈를 잠재우고 양안관계를 최대 현안으로 부각시켰다.

 이런 원칙 아래 구체적인 합의나 진전된 논의도 있었다. 마 총통이 제안한 핫라인 설치에 대해 시 주석은 “즉각 처리하겠다”고 화답했다. 중국 소식통은 “장즈쥔(張志軍) 국무원 대만판공실 주임(장관급)과 대만 측 파트너 사이에 핫라인이 가동될 것”이라고 말했다. 후속 정상회담의 여지도 남겨 뒀다. 마 총통은 “시 주석을 대만으로 초청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상태화(常態化)’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언제 2차 회담이 열려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을 내비쳤다.

 중국이 대만 해협 연안에 배치한 1500여 기의 미사일 문제가 논의된 것도 의미가 있다. 모두발언에서 ‘적대상태의 완화’를 제기했던 마 총통은 대만인이 느끼는 미사일 위협을 비공개회담에서 언급했다. 대만 언론들은 이 부분을 크게 보도했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대만을 겨냥한 게 아니다”고 넘겨 구체적 논의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내년 1월 선거에서 민진당의 집권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회담장에서 만난 대만 기자들은 “정상회담이 선거 결과를 바꾸진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민당 집권 8년간의 지나친 중국 접근에 대한 피로가 유권자들 사이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당은 아성인 타이베이 시장 자리를 내줬다. 대만 여론조사에선 ‘현상 유지’로 족하다는 비율이 60% 전후를 차지한다. “지금보다 더 나가면 중국의 전략에 휘말린다”는 게 대만인들의 속내다. 이런 여론의 지지를 업고 민진당이 집권하면 양안관계는 지금보다 냉각될 수 있다. 그렇다고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진 않다. 대만 일간지 왕보의 한 기자는 “민진당이 집권해도 경제적·인적 교류를 돌이킬 순 없다”며 “2000년 집권한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 시절과 같은 급진적 대만 독립 주장은 자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요컨대 시진핑-차이잉원(蔡英文) 시대가 와도 이심전심으로 현상 유지를 지향할 가능성이 점쳐진다는 얘기다.

싱가포르=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