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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농장 안 가요, 스마트폰으로 다 봐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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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호 4 면

전북 익산시 낭산면 일대 6000㎡ 규모의 비닐하우스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오희준(52) 희망담은농장 대표. 새벽 5시쯤 일어나는 그는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먼저 찾는다. 밤새 딸기는 잘 자랐는지, 비닐하우스의 온도나 습도는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딸기의 생육 상태를 살펴본 오씨는 물과 비료를 생육 상태에 맞게 보충하고, 온도와 습도를 확인한 뒤 환기창을 연다. 기계라는 게 오작동을 하기 마련이지만 환기창이 잘 열리고 닫히는지 걱정할 필요 없다. 비닐하우스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비닐하우스 안팎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 농사 8년 만에 해외 여행과거엔 새벽같이 농장으로 달려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하나하나 조작해야 했던 일이지만 오씨는 이제 침대에 누워 간편하게 해결한다. 지난여름엔 가족과 5박6일 동남아 여행도 다녀왔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8년여 만의 첫 나들이였다. 오씨는 “8년여간 비닐하우스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다”며 “인터넷만 되면 어디서든 농장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보니 삶까지 바뀌었다”고 말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IoT)을 비닐하우스에 접목한 덕분이다. 비닐하우스에 각종 센서와 모터를 달고 이를 모두 인터넷으로 연결해 집 안은 물론 국내외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해 농장을 살피고 관리한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이른바 ‘스마트 팜(Smart Farm)’이다.


?스마트 팜이 보급되면서 밤새 기온이 떨어져 딸기가 얼지나 않을까 밤잠을 설치고, 눈만 뜨면 농장으로 달려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한시도 농작물 곁을 떠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여행을 가기도 하고, 명절 땐 도시로 역귀성하기도 한다. 스마트 팜이 농촌의 풍경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이 같은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비닐하우스는 전국에 755만㎡에 이른다.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것으로 1년 내내 최적의 환경을 조성할 수 있으니 수확량도 늘고 품질도 좋아졌다. 오씨는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자동으로 온도·습도 같은 생육환경을 조절하니 생산량도 20%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농식품부가 최근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 10가구를 대상으로 성과를 평가한 결과 생산성은 22.7% 증가한 반면, 노동력과 생산비용은 각각 38.8%와 27.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족도(5.0만점에 4.5점)도 높았다.


딸기 생산량 22.7%↑ 비용 27.2%↓농업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축산업에도 스마트 팜을 도입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천안시에서 돼지 2000마리를 키우는 정창용(50) 풍일농장 대표도 스마트 팜 덕에 농장 모니터링이나 관리가 수월해졌다. 돼지의 체중을 수시로 측정해 성장 단계에 맞게 사료량을 조절하거나 분만·출하·폐사·항생제투여 실적 등을 데이터화해 분석한다. 정씨는 “데이터가 쌓이면서 폐사나 사료량 급증과 같은 이상 현상을 신속히 파악할 수 있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찾아내 해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 결과 돼지 농가의 생산성 지표로 활용되는 MSY(어미 돼지 한 마리당 출하 돼지 수)가 18마리에서 1년 만에 21마리로 높아졌다. 이는 국내 양돈농가 평균치(16.6마리)보다 27% 높은 것이다. 이 같은 스마트 축사는 현재 전국 150호 정도다.


 농식품부는 스마트 팜을 더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농업을 미래성장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핵심 과제 중 하나로 현재 비닐하우스와 돼지농가에 적용되고 있는 스마트 팜 기술을 과수원이나 양계·젖소·한우농가로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우리 농가는 현재 고령화와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지만 스마트 팜은 이 같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어미 돼지가 낳은 새끼 18→21마리스마트 팜 덕에 농가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지만 그렇다고 장밋빛 미래만 있는 건 아니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스마트 팜을 운영하고 있는 농가들은 “ICT 장비는 잘 쓰면 약이지만 못쓰면 애물단지”라고 입을 모은다. ICT를 활용한 장비를 들여오는 것 자체가 결국엔 투자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보조금을 주고 있지만 아직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만만찮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 관계자는 “비싼 돈을 들여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가뜩이나 어려운 농가 살림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운영하는가도 중요하다. 그러나 농사와 ICT 관련 기계에 대한 전문성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농가 간의 빈부격차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그나마 돈을 투자할 여력이 있는 농가는 사정이 괜찮은 셈이다. 사물인터넷 설비에 투자할 수 없는 영세한 농가는 앞으로 점점 더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농식품부도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저렴하면서 한국 농가 특성에 맞는 스파트 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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