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소규모기업 … 일본은 노인 자립경제 택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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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소설 『2030년 그들의 전쟁』은 가까운 미래의 미국 사회를 그리고 있다. 이 소설엔 26세 청년이 버스에서 총기를 난사한 뒤 현장에서 사살되는 장면이 나온다. 희생자는 대부분 노인. 사건 직전 청년이 하원의원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되면서 살해 동기가 드러난다. ‘나는 병원도 잘 안 가는데 힘들게 번 돈으로 노인들에게 의료비 대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새로운 위기 ‘세대전쟁’ 막으려면
젊은층의 부양 반발 커지지만
무조건 연금 줄이면 사회 혼란
청소년 상담, 장애인 도우미 등
다양한 노인 일자리 필요

 전문가들은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로 한국 사회도 ‘실버범죄’와 ‘세대전쟁’이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고 말한다. 구교준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추세대로라면 생산력을 가진 인구는 줄고 노인만 늘어난다”며 “유소년보다 노인이 세 배가량 많은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산도 줄이고 소비도 줄여야 사회가 지속될 수 있다. 모든 패러다임이 바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년층 급증에 따른 경제적 부담은 당장 직면한 과제다.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부양해야 하는 노인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저성장, 저고용 등 경제 상황은 과거 세대보다 악화돼 있는데 그들을 위해 내야 할 비용은 늘어난다. 젊은 층이 ‘왜 우리가 부담을 져야 하느냐’는 반발심을 가질수록 세대전쟁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질 것”이라고 제시했다. 또 “시간이 갈수록 노인 인구가 늘어나기 때문에 한정된 재원과 정치·사회적 주도권을 둘러싼 세대 갈등이 더욱 첨예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2014년 현재 노인 인구는 638만여 명으로 생산가능인구(3477만여 명)의 18% 수준이지만 2040년에는 1650만 명까지 상승해 생산가능인구(2887만여 명)의 약 57%까지 상승한다. 청년층과 노인층의 인구 격차가 큰 폭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서 교수는 “최근 이탈리아에서 모든 부채를 동결시키고 청년들에게 매달 1000유로를 주겠다며 급부상한 ‘5성운동’처럼 포퓰리즘적 극우 정치 세력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부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경제적 토대를 확보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봉수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논문을 통해 “노인 일자리 창출과 재취업 기회를 확대하면 앞으로 초래될 문제들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연금수령액 축소 등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계봉오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수령액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다른 파생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접근”이라며 “경제활동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이 되는 연금마저 줄일 경우 사회적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보다 20여 년 일찍 고령화 현상을 경험한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의 경우 노인 중심으로 협동조합이나 소규모 기업 등을 만들어 자립에 성공한 사례가 많다”고 했다. 일본고령자생활협동조합이 대표적이다. 65세 이상 노인으로 구성된 조합원들은 청소년 상담을 해주며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또 ▶장애인 도우미 ▶병원 데려다주기 ▶시장 보기 등 장애인·맞벌이 부부 등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다.

 양 교수는 “일본도 무수한 시행착오를 한 끝에 해답을 찾아나가기 시작한 단계”라며 이렇게 말했다. “일본 사례를 참고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반드시 정답은 아닙니다. 우리 실정에 맞는 바람직한 모델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유성운·박병현 기자 park.b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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