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의사에게 주사 맞고 사지마비…법원 "병원, 3억여원 배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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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5일 어지럼 증세와 등 부위 통증을 느낀 A씨(73·여)는 전남의 병원을 찾았다. 병원 의료진은 곧장 엑스레이 촬영 후 척추의 맨 윗부분인 목뼈 경막외강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놨다. 통증 완화를 위한 조치였다.

시술 이틀 뒤 오전 A씨는 팔과 다리 힘이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오후에는 걷기조차 힘든 상태가 됐다. 병원 측은 또 하루가 지난 뒤에야 광주광역시의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처음 병원을 찾은 지 사흘 만이었다.

대학병원 정밀 검사 결과 A씨가 신경차단술 시술을 받은 부위에서 혈종이 발견됐다. 혈종은 혈액이 핏줄에서 빠져나와 괴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혈종이 생긴 지는 최대 사흘이 지나지 않았을 것으로 대학병원 의료진은 판단했다. 그 사이 A씨의 건강은 계속 나빠져 사지가 마비됐다. 식사와 자세 변경, 대·소변 등 생명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움직임 조차 불가능했다.

A씨 측은 "의료진이 목뼈 신경을 손상시켰고, 이상 증세가 발견된 뒤 완화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며 병원 담당 의사와 병원장을 상대로 총 5억9000여만원을 요구하는 의료소송을 제기했다.

병원 측은 "시술 자체에는 과실이 없고 시술로 인해 신경이 손상됐다고 하더라도 신경 손상이 (사지 마비의 원인이 된) 혈종을 유발했다고 볼 근거도 없다"며 맞섰다. 또 대학병원 판단과 달리 "A씨에게 생긴 혈종은 급성이 아닌 만성"이라고 주장했다. A씨가 평소 복용하는 항응고제 부작용에 따른 발병 가능성도 제기했다.

법원은 A씨 측 손을 들어줬다. 광주지법 민사14부(부장 조정웅)는 A씨 측이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병원장과 담당 의사는 A씨에게 총 3억3000만원을, A씨의 자녀 4명에게는 각 5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배상액은 총 3억5000만원이다.

재판부는 병원 측이 시술한 부위와 혈종이 발생한 부위가 같은 점, A씨에게 나타난 혈종이 급성인 점에서 의료진에게 책임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의료진이 직접 척수 신경을 손상키지지 않았더라도 (결국은) 주의 의무를 위반해 주사를 잘못 놓아 시술 부위에 경막하 출혈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시술 후 이상 증세를 보인 A씨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전원 조치도 지체된 것으로 보인다"며 "경막하 출혈이 혈종이 돼 신경을 손상시킨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고령인 A씨의 남은 수명이 7.2년으로 추정되는 점, A씨가 이미 척추관 협착증을 앓고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병원 측 책임을 80%로 제한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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