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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카드수수료에 개입한 당정, 총선용 선심 정책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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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와 여당이 어제 중소·영세 가맹점의 신용카드 결제 수수료율을 0.7%포인트씩 낮추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연매출 2억원 이하인 영세 가맹점의 수수료율은 매출의 1.5%에서 0.8%로, 연매출 2억~3억원인 중소 가맹점의 수수료율은 매출의 2%에서 1.3%로 각각 낮아진다. 이를 통해 영세 가맹점은 한 해 최대 140만원, 중소 가맹점은 210만원까지 수수료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당정은 설명한다. 카드 수수료에 대해선 야당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어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

 카드 수수료가 낮아지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음식과 유통업에 주로 종사하는 영세·중소 자영업자들의 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불황으로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데다 온라인과 모바일 거래가 확대되면서 시장 안에서 설 자리도 좁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임대료는 꼬박꼬박 오른다. 카드 수수료 부담이 한 달 10만원 남짓이라도 줄어든다면 숨통을 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은행이나 대기업이 주로 운영하는 카드사들이 고통을 분담할 여력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정공법이 아니다. 카드 수수료 역시 일종의 가격이다. 카드사들의 경쟁과 혁신을 통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6월 “금융회사의 가격·수수료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당정은 여신전문업법에 카드 수수료를 강제할 근거가 있다는 이유로 시장의 가격결정 기능을 무시했다. 안 그래도 2012년 대대적인 수수료 개편 이후 국내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미국 등 주요 국가와 큰 차이가 없어진 상태다. ‘총선을 의식한 선심 정책’이란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카드를 쓰는 일반 국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면밀히 따졌는지도 의문이다. 수수료율 인하로 카드사 수익이 6700억원가량 줄어든다고 한다. 할인이나 포인트, 부가 혜택처럼 소비자들이 받고 있는 혜택이 줄어들 게 뻔하다. 결국 카드사가 아니라 일반 국민의 고통 분담이 될 수 있다. 시장을 활용하는 세련된 정책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