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중·일 협력 재개 발판 마련한 3국 정상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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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 정상이 어제 한자리에 모였다. 2012년 5월, 베이징에서 머리를 맞댄 이후 3년 반 만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어제 청와대에서 3국 정상회의를 갖고 “이번 회의를 계기로 3국 협력 체제가 완전히 복원됐다”고 선언했다. 무려 56개 항목에 이르는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한 공동선언’도 채택했다. 과거사와 영토 문제로 냉랭했던 3국 협력 프로세스가 정상화하는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한·중·일 정상은 ‘역사를 직시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3국이 관련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고 양자 관계 개선 및 3국 협력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경제적 상호의존과 정치안보 상의 갈등이 병존하는, 이른바 ‘동북아 패러독스’를 극복해야 한다는 데도 인식을 같이했다. 이미 운영되고 있는 20여 개의 장관급 협의체를 포함해 50여 개의 정부 간 협의체 및 각종 협력사업을 보다 활발히 추진해 나간다는 데도 합의했다. 또 3국 협력기금(TCF) 조성을 통해 3국 간 협력 사업을 더욱 확대·발전시켜 나간다는 데도 합의했다. 아울러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의미 있는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시들했던 3국 간 협력이 다시 제자리를 찾고 본격화하는 발판을 마련한 점이 이번 정상회의의 가장 큰 성과다.

 글로벌 저성장 시대를 맞아 3국 간 경제통합에 속도를 내기로 한 점도 눈에 띈다. 높은 수준의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 협상을 본격화하고, 중국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 타결에도 노력하기로 했다. 또 전자상거래에 대한 규제와 장벽을 철폐해 15억 인구의 디지털 단일시장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2.8%(16조9000억 달러), 교역액의 18.6%(6조9000억 달러)를 차지하는 한·중·일 3국의 경제적 협력과 통합은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글로벌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는 한국의 주도로 성사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면서도 한·일 관계 복원을 바라는 미국의 요구를 적극 반영한 결과다. 이번 정상회의가 실질적 의미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합의 사항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다시 과거사나 영토 문제에 발목이 잡혀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역사와 영토 문제를 3국 간 협력과 분리하는 투트랙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이를 위해 역사를 직시하며 미래를 지향한다는 정신에 입각해 실질적 협력을 흔들림 없이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가 중요하다. 과거사나 영토 문제로 3국 협력 체제가 다시 삐걱댄다면 어제 한자리에 모였던 세 정상은 한·중·일의 15억 국민은 물론이고 국제사회 전체를 기만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