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연애할수록 외로워, 전에도 그래서 헤어졌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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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예전같이 안 설레는 연애 6개월차) 대학 졸업반 여대생입니다. 6개월 정도 만난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저는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사람을 많이 알아갈수록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타입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표현하고 서로 교감을 많이 나눴으면 하는데요. 남자친구가 여전히 절 많이 챙겨주고 도와주긴 하지만 어쩐지 연애 초기보다는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이나 설렘이 덜해진 것 같아요. 이런 문제로 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남자친구의 바쁜 상황이 이해는 갑니다. 또 사랑의 형태가 시간이 지날수록 변해간다는 것도 이해하고요. 하지만 연애를 하면서 느껴지는 외로움과 서운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런 감정이 일주일에 두세 번씩 찾아오거든요. 이전 3년간 만난 남자친구와 갈등을 빚다가 결국 헤어진 것도 저의 외로움이 큰 요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이런 오르락내리락 하는 감정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이 없을까요.

사랑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고독

A (문제는 사랑이 아니라는 윤 교수) 사랑에 대한 사연인 듯하지만 실은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외로움은 사랑을 하게 만드는 동기 에너지를 제공하죠. 사랑하면 이 외로움을 채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깁니다. 그런데 사랑을 해도 외로우니 당황스럽고 마음이 더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사랑과 외로움은 반대말이 아닙니다. 친구처럼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동반자 관계죠. 사랑의 결핍이 외로움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남친을 바꿔야겠죠. 나랑 잘 안 맞든지 아니면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외로움이 찾아온 것으로 봐야 할 테니까요. 그런데 정도의 차이일 뿐, 남자친구를 바꿔도 외로움은 계속 찾아옵니다. 외로움은 단순한 결핍의 감정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기본적인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린 태어날 때부터 외로움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유전적으로도 더 외롭게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외로움에 대한 쌍생아 연구를 보면 일란성 쌍생아의 경우 형이 외로움을 잘 타면 동생도 외로움을 잘 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외로움은 단순한 결핍의 감정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에 코딩되어 있는 감정인 것이죠. 외로움의 유전자를 더 깊이 가진 사람은 연애를 해도 그 외로움이 항상 곁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그래서 외로움을 없애기 위해서 연애를 하는 건 기본 설정이 잘못된 겁니다. 연애를 안 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외롭기 때문에 연애를 합니다. 그런데 연애를 해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외로움은 결핍의 감정이 아닌 기본적인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연애를 하는데 왜 외롭지 하고 놀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연애는 외로움을 없애기보다 오히려 진짜 짠한 인생의 외로움을 느끼게 해주기에 가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드네요.

외로움은 나쁜 감정이 아니다

연애를 해도 찾아오는 외로움, 이 녀석을 어떻게 바라봐야 좋을까요. 외로움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걸 인식하고 너그럽게 그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외로움은 사실 좋은 감정이고 꼭 필요한 감정입니다. 외롭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자 하는 동기가 생기는 것이죠. 혼자는 약합니다. 뭉쳐야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가족을 만들지 않았다면 생존력이 크게 떨어지고 2세를 만들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외로움 덕분에 우리 인류가 생존하고 있는 것이지요. 비슷하게,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불안이란 감정도 사실은 좋은 감정입니다. 불안은 위기관리 행동을 일으키는 감정 신호입니다. 시험 불안이 전혀 없는 학생이 시험을 잘 볼 수 없겠죠. 농경사회에서 겨울 식량에 대한 불안이 없다면 식량을 모아 놓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외로움이나 불안 모두 소중한 우리의 감정 반응이고 정상적인 감정 신호입니다. 결핍이나 병적인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외로움이란 감정이 생길 때 ‘어떡하지, 내가 연애 상대를 잘못 골랐나’ 걱정하지 마세요. 인생길에 항상 함께하는 외로움이란 친구를 반겨주고 즐기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나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이 외로움이란 녀석아, 평생 함께하자꾸나. 네 덕택에 오늘 한 잔 술이 맛있구나’하며 풍류 시인 코스프레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 외로움을 동력으로 창조적인 생산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유명한 예술 작품 중의 상당수는 외로움이 주인공입니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정신과 진단명은 없습니다만,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일 때 고려해 보는 진단명이 있습니다. 바로 조현성 인격입니다. 전체의 5% 정도에서 나타난다고 추정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사회적 유대 관계에서 떨어져 혼자 있기를 좋아합니다. 가족에 대해서도 무심하고 일이나 취미도 혼자서 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견디기 힘든 고독한 업무를 잘 수행하기도 하죠. 사람을 적게 만날 수 있는 야간 업무를 오히려 선호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런 조현성 인격도 깊은 무의식에는 외로움이 존재할지 모릅니다. .

 외로움이나 우울 같은 감정 반응에 우리가 지나치게 부정적인 느낌을 갖고 있다 보니 그런 느낌들이 찾아올 때면 그 기분을 날려 버리기 위해 기분 전환이라는 심리 기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기분 전환이란 말은 가볍게 보이지만 사실은 강력한 조정 기법입니다. 뇌의 에너지를 상당히 태우면서 억지로 감정 변화를 시도하는 마음 관리법이죠.

 왜 기분 전환을 우리가 자주 사용하게 되었을까요. 외로움이나 우울 같은 감정 신호를 결핍에 의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외로우면 내 인생은 불행한 것’이라고 뇌에서 해석을 해 버리니 에너지를 태워서라도 억지로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죠. 그러나 기분 전환을 너무 자주 사용하다 보면 뇌가 오히려 지치게 됩니다.

 사랑 때문에 우울할 때, 억지로 기분을 좋게 만드는 기분 전환보다는 오히려 우울한 사랑 노래를 들으면 역설적인 긍정성이 올라오는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공통된 인간성(common humanity)로 설명하는데 ‘인생 다 똑같아’라는 뜻이죠. ‘내 사랑은 왜 우울하지, 나만 실패한 것인가’ 하는 느낌에 빠졌을 때 우울한 사랑 노래를 듣다 보면 ‘아, 나만 사랑이 힘든 것은 아니구나. 사랑이란 것이 워낙 힘든 것인가 보다’ 하는, 내 삶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죠. 이 여유가 힘든 상황에서도 다시 웃을 수 있는 긍정성을 가져오게 합니다.

 내가 하는 사랑이 부족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워낙 사랑은 힘든 것이라는 철학적 성숙이 마음에 찾아오는 것이죠. 어찌 보면 사랑은 그 맛에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강력한 긍정성마저 생길 수 있죠.

 그래서 문화 콘텐트에 대한 몰입이 중요합니다. 이런 철학적 성숙이 주는 느낌은 논리적으로 나를 설득한다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영화, 미술 작품, 소설 같은 문화 콘텐트에 내 감성을 젖게 할 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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