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 남긴 조흥은행 협상 타결] 신한銀 노조 "회사가 너무 양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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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것을 양보한 것 같다. 신한은행 직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신한은행 이건희 노조위원장)

"정부의 매각을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현실적인 목표를 위해 노력했다."(허흥진 조흥은행 노조위원장)

조흥은행 노조와 신한금융지주의 협상에 대해 두 노조 위원장의 평가는 대체로 '조흥 쪽에 유리하게 끝났다'는 것이다. 금융계에서도 일단 이번 협상의 득실계산을 '조흥의 판정승'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 은행 관계자는 "합병을 3년 미루고, 고용과 임금을 조흥노조의 요구대로 보장해줬다"며 "정부가 파업을 끝내는 데만 집착해 신한지주를 몰아붙인 결과"라고 말했다.

반면 합의안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구체적으로 조흥노조가 얻은 게 없다는 지적도 있다.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우리가 너무 많이 양보했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용을 음미해 보면 결정권은 우리가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대등 합병=신한지주 입장에서 보면 이번 거래는 조흥은행을 사들이는 인수.합병(M&A)이라기보다는 은행 대 은행의 대등한 통합에 가깝다. 많게는 3조4천억원의 인수자금을 내면서도 경영권 등을 완전히 행사할 수 없는 조건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반면 조흥노조로선 협상의 3대 쟁점이었던 ▶조흥은행 브랜드의 계속 사용▶통합 유예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조흥 출신을 초대 통합은행장 임명 등에서 통합은행장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관철했다.

당초 신한지주는 지난해 12월 최종입찰 때 조흥노조의 반발을 우려해 가격 이외의 인수조건으로 '2년간 인위적인 구조조정 금지'정도를 내놓았었다.

이번 협상에선 그보다 대폭 양보한 ▶3년간 독립법인 유지▶법인 명칭은 조흥은행을 사용▶사실상 완전 고용보장과 임금 대폭인상 등의 조건들이 포함됐다. 또 '통합을 추진하더라도 대등 통합을 원칙으로 한다'는 별도 항목까지 합의했다.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은 "대등 합병을 끌어낸 것이 이번 협상의 최대 성과"라고 말했다. 조흥노조는 당초 내세웠던 '매각 저지'를 양보하는 대신 챙길 수 있는 실속은 대부분 챙긴 셈이다.

반면 가능한 한 빨리 화학적 통합을 거쳐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할 신한지주로서는 인수.합병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합병효과 기대 어렵다= 조흥노조는 '매각 철회'라는 명분은 잃었지만 고용과 임금 보장이란 두 가지 '실리'를 모두 챙겼다. 조흥노조 측은 '인위적 인원감축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음으로써, 3년간의 과도기는 물론 통합 후에도 계속 고용을 보장하는 '사실상 완전 고용보장'을 얻어냈다는 자평이다.

게다가 조흥 노조원들은 앞으로 3년 동안 30% 이상 임금이 올라 신한과의임금 격차를 없앨 수 있게 됐다. 신한은행 직원들의 직급과 경력에 맞춰 조흥 노조원들의 임금을 올려주기로 한 데 따른 것인데, 이렇게 인건비를 많이 부담하고서는 합병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금융계의 분석이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임금인상 비율은 경영상태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기 때문에 실제 인상폭은 작을 수도 있다"며 "명예퇴직 등 자연적인 감축은 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와 함께 '조흥은행은 파업과 관련한 사법처리가 최소화되도록 노력하고 (노조에 대해) 민형사상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대목은 두고두고 논란을 부를 전망이다. 전산센터 직원 3백여명이 파업에 참여한 것은 중대한 실정법 위반이지만 이를 그냥 봐주겠다고 합의한 셈이기 때문이다.

◆2년 후 갈등의 불씨만 남겨=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의 통합은 2년 후부터 '논의'하되 1년 안에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통합 여부를 놓고 이견이 생길 경우 통합 자체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조흥노조가 재파업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합의문에 의미가 불확실하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표현들이 많아 2년 뒤 새로운 분쟁의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분란의 불씨는 모두 2년 뒤로 넘겨놓고 임금인상과 고용보장 등 노조의 요구만 들어준 셈"이라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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