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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속의 60%로 가속한 양성자, 암세포 정밀 타격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 사이클로트론 내부 모습.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웁살라(Uppsala)시. 우리나라로 치면 대덕연구단지와 KAIST가 있는 대전쯤 되는 도시다.

각종 연구소와 다국적 기업이 즐비한 웁살라의 한복판, 흡사 거대한 냉장고 혹은 금고를 연상시키는 물체가 GE헬스케어의 한 공장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의 총괄매니저인 에리크 슈트룀비스트(Erik Stromqvist)는 “거대하고 복잡한 커피머신”이라고 익살스럽게 소개했다. 양자물리학·화학·기계공학·광학기술이 집대성된 ‘사이클로트론’이다.

‘꿈의 암치료기’라고 불리는 양성자치료기부터 현재 가장 정교한 진단기기인 PET(양전자단층촬영)까지 핵심 기술은 바로 이 사이클로트론에서 나온다. 


전자는 광속의 97.7%로 가속

사이클로트론은 입자가속기의 일종. 전자나 양성자 같은 입자를 넣고 목적에 맞게 가속한다. 일례로 암을 치료하기 위해선 양성자를 빛의 60% 속도까지 가속한다.

양성자보다 1800배 가벼운 전자를 가속하면 빛 속도의 97.7%에 도달한다.

무게가 6t에 달하는 문이 열리자 납작하고 거대한 원통형의 전자석이 바닥과 수직인 상태로 고정돼 있었다. 자세히 보면 1~2㎝ 두께의 포일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소용돌이처럼 촘촘히 감겨 있다.

슈트룀비스트에 따르면 포일은 일종의 관 역할을 한다. 그는 “원통의 앞뒷면에서는 각각 양극과 음극의 자기장이 작용하는데, 이때 원통의 한가운데로 양성자를 집어넣으면 자기장의 힘을 받아 점점 더 큰 원을 그리며 운동한다”고 설명했다.

지름이 크든 작든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동일하다. 원을 크게 그릴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충분한 가속을 마친 입자는 마침내 사이클로트론의 밖으로 튀어나온다. 슈트룀비스트는 “양성자 빔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이렇게 가속된 입자는 에너지 크기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된다. 전자 1개를 1V로 가속할 때 얻는 운동에너지를 eV(electron volt)라고 하는데 10KeV, 즉 전자 1개를 10㎸로 가속하면 물질 표면에 원하는 원자를 주입할 수 있다.

면도날의 쇠 속에 질소를 심어 날을 강하게 만들고, 반도체의 전도율을 높이기 위해 소량의 불순물을 첨가하는 ‘도핑(doping)’에도 사용한다. 1~100MeV(1MeV=1000KeV)로 가속한 입자는 의료 목적으로 쓰인다.

에너지가 10GeV를 넘어가면 무거운 원자핵을 쪼갤 수 있다. 현재 최고 성능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는 100GeV까지 출력할 수 있는데, 원자핵 속의 양성자나 중성자를 쪼개 소립자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면도날·반도체 제조에 활용

현재 사이클로트론은 의료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암이나 심혈관·뇌혈관질환은 물론 알츠하이머파킨슨병을 진단하는 데 사용하는 PET가 대표적이다.

PET로 암을 진단하기 위해선 ‘F18(Fluorine18, 불소의 동위원소)’ 혹은 ‘C11(Carbon11, 탄소의 동위원소)’과 같은 방사성동위원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이클로트론은 바로 이 동위원소를 생산한다. 암세포는 포도당을 원료로 몸집을 키우는 성질이 있다.

‘FDG’라는 방사성의약품을 인체에 투여하면 포도당에 반응하고, F18은 이를 영상화한다. 실제 슈트룀비스트가 보여준 PET 화면에 암 부위가 빨간색으로 표시돼 있었다.

이 같은 특성 덕분에 PET는 기존 CT(컴퓨터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촬영)보다 더 정확하고 자세한 진단이 가능하다. 암을 예로 들면 CT·MRI는 종양의 크기와 모양만으로 암을 진단하는 데 비해 PET는 몸 전체에 퍼져 있는 암세포의 특성과 전이 여부까지 영상화할 수 있다.

양성자치료기는 보다 큰 에너지의 양성자를 필요로 한다. 몸을 통과한 양성자는 정상 조직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암 조직에 이르렀을 때 에너지를 방출한다. 에너지를 모두 방출한 양성자는 곧바로 소멸한다.

기존 방사선(X선) 치료와 비교해 치료 효과는 뛰어나고 부작용은 오히려 적다. 방사능 노출량이 적은 것도 장점이다. 슈트룀비스트는 양성자치료를 유도미사일에, 방사선치료를 재래식 자주포에 비교했다.

그는 “적이 숨어 있는 곳까지 찾아가 필요한 부분에서 폭발하는 것과 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 무차별 폭격하는 것의 차이”라고 말했다.

양성자치료는 특히 폐·간·전립선·뇌종양에 효과가 크다. 초기 폐암과 전립선암, 간암, 구강암, 후두암은 수술 없이 완치가 가능한 수준이다. 수술로 조직을 제거하기 어려운 뇌종양의 경우 양성자치료 도입 이후 완치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촬영시간 단축한 3세대 모델

단점은 지나치게 크고 무겁다는 점이다. 운반과 설치가 어렵고, 사용이 까다롭다. 실제 슈트룀비스트가 처음 소개한 사이클로트론은 높이가 2m를 훌쩍 넘었으며, 무게가 20t에 달했다. 고에너지를 방출하기 때문에 2m 두께의 콘크리트 벽으로 감싸져 있었다.

슈트룀비스트는 “아이언맨이 원자로를 작게 만들어 자신의 가슴에 끼웠듯 사이클로트론 역시 소형화가 기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옆방으로 옮겨가 무게가 11t인 2세대 모델과 6t인 3세대 모델을 차례로 소개했다. 크기는 성인 남성의 키 정도(1m70㎝)에서 가슴 높이(1m40㎝)까지 점점 작아졌다.

특히 최근에 출시된 3세대 모델은 종전에 비해 촬영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움직임을 보정하는 기능이 추가됐다. 슈트룀비스트는 “PET용 사이클로트론은 한 해에 50여 대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그만큼 복잡한 기계”라며 “물리학부터 화학, 기계공학, 소프트웨어 기술의 결정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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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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