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비행청소년 '문학치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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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9시30분 경기도 안양의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 과거에는 '안양 소년원'이라 불렸던, 미성년자 기결수가 생활하는 곳이다. 현재는 15~19세 여성 청소년만 모여 산다.

이곳에 낯익은 얼굴들이 나타났다. 고은.김형수 시인과 이경자.정도상.김은숙 소설가. 이른바 '별과 꿈' 문학회 소속 회원들이다. 과거 민주화운동 등으로 교도소나 유치장 생활을 경험한 문인의 모임이다. 고은.김지하.황석영.황지우.송기원.도종환 등 20명이 넘는다.

문학회는 최근 문화예술진흥원의 문화 소외지역 전국순회사업 대상자로 뽑혀 구치소와 청소년 교정시설을 돌며 '문학치료'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앞으로 6개월 동안 2주일에 한번씩 시.소설 강의를 한다. 그 첫 행사가 안양에서 열린 것이다.

고은 시인이 강연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시인은 "병아리가 세상에 나오기 위해 달걀 안에서 연약한 부리로 껍데기를 쪼기 시작할 때 어미닭도 밖에서 껍데기를 쫀다.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만물이 함께 힘을 쏟아야 한다. 여러분이 지금은 여기에 있지만 껍질을 깨고 나온다는 자세로 생활한다면 온 세상이 힘을 합쳐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시와 소설을 써보겠다고 지원한 학생은 모두 스물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날 강의에 나온 건 열 명이었다. 시 부문 여섯 명, 소설 네 명이 모였다. 상처받은 아이들과의 자리여서 문인들도 조심을 했지만 강의 막판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문학회 회장인 정도상(46)씨가 '내 가족 이야기'란 주제로 글짓기 숙제를 내자 아이들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이를 바로 눈치 챈 시인 김형수(46)씨가 말을 바꿨다.

"가족 얘기는 별로 재미없겠네. 내 그리운 사람으로 합시다. '가장 보고 싶은 사람에게'란 주제로 시를 써도 좋고, 일기나 편지도 좋고. 어때요?"

그제야 아이들 얼굴이 펴졌다. 십대 범죄의 대부분이 불우한 가족 환경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깜빡했던 것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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