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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선거구 획정안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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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5년 10월 14일 34면>
선거구획정위 3(여)-3(야)-3(선관위)으로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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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총선 때마다 선거구 획정은 춤을 추었다. 17~19대 총선은 모두 선거일을 겨우 한 달여 앞두고서야 선거구가 정해졌다. 국회의장 자문기구로 외부인으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자문위가 있었지만 말 그대로 자문이었다. 법적 구속력이 없으니 획정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여야가 마음대로 칼질을 했다. 이런 폐해를 없애보려고 이번 총선에 대비해 만든 게 선관위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다. 그런데 이번에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법에 따르면 획정위는 총선 6개월 전(10월 13일)까지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국회 정개특위에서 이견을 달면 다시 조정해 최종안을 만든다. 이 안에 대해선 추가 수정이 불가능하고 국회는 본회의 표결에 부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런데 획정위는 시한 내에 안을 만들지 못하고 두 손을 들었다. 사실상 “우리는 못하겠으니 국회가 마음대로 정하라”는 것이다. 위원장을 맡은 김대년 선관위 사무차장은 어제 획정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다.

 여야가 지난 5월 새로운 각오로 독립 획정위 제도를 만들었는데도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가. 구조적으로 합의가 어렵게 돼 있고 이런 공간 속에서 획정위원들이 여야의 대리전을 치렀기 때문이다. 법에 의하면 획정위원 9명은 여당 추천 4명, 야당 추천 4명, 그리고 선관위 인사로 돼 있다. 그런데 의결정족수를 3분의 2로 하는 바람에 꽉 막혔다. 위원들이 여야 성향별로 똘똘 뭉쳐 ‘6명 찬성’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막판에 회생시키는 농촌 선거구 1석을 놓고 위원들은 갈렸다. 여당 성향은 강원, 야당 성향은 호남을 고집했다. 선관위 출신 위원장은 결정권을 가지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국회가 이런 구조로 획정위를 만든 것은 결국 최종 결정권을 자신들이 가지겠다는 고도의 포석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여야는 법도 이렇게 엉성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기준을 정해달라는 획정위의 거듭된 요청도 뿌리쳤다. 만약 여야가 국회의원 정수와 지역구-비례대표 비율을 확정해 넘겨주었다면 획정위는 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기준이 유동적이니 획정위는 자신들의 안도 결심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공은 정치권으로 넘어왔다. 여야는 선거구 획정뿐 아니라 공천제도에서도 방황하고 있다. 선거가 6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선거구와 공천 방식이 안갯속에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능한 정치 신인이 확실한 계획을 세울 수 있나. 이런 혼란은 국가의 정치 자산에 대한 손해다.

 여야는 속히 비례대표, 권역별 의석 배분, 농어촌 지역구 배려 방안 등에 합의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획정위가 명실상부하게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 여야 추천을 3명씩으로 하고 나머지 3명은 선관위에 주어 중립적인 선관위가 최종 결정권을 갖도록 하는 방안도 연구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2015년 10월 14일 31면>
무책임 정치권과 무소신 획정위가 낳은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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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이하 획정위)가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작업의 법정 시한을 끝내 지키지 못하고 13일 사실상 손을 들었다. 김대년 획정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법정 기한인 10월 13일까지 국회에 획정안을 제출하지 못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이제 국회가 정치적 결단을 발휘해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정치권의 게리맨더링(부정 선거구 획정)을 막기 위해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독립기구를 사상 처음으로 설치했는데, 그 독립기구가 결정을 못 내리고 다시 정치권에 공을 넘겼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이러니 국민이 정치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엔 우선 여야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숫자, 구체적인 선거구 획정 기준을 정해달라고 획정위는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여러 차례 요청했다. 당리당략에 얽매여 이 기준을 정하지 못한 건 정치권이다. 획정위가 지역구 수를 244~249개로 정한 뒤에야 정치권, 특히 새누리당 의원들은 “농촌 지역구를 줄여선 안 된다”고 획정위를 강하게 압박했다. 정당 추천을 받아 임명된 획정위원들이 이런 압력을 견뎌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당 추천을 받았더라도 획정위가 독립기구인 이상 ‘원칙과 상식’에 따랐다면 이렇게 빈손으로 활동을 끝내진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독립기구까지 만들면서 선거구 재획정에 나선 이유는, 헌법재판소가 인구 편차가 심한 기존의 선거구를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획정위는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인구 편차 2 대 1’을 제1의 원칙으로 삼아 획정 작업에 나서는 게 옳았다. 그랬다면 아무리 외부 압력이 있더라도 선거구 획정을 하지 못할 리가 없다. 농촌 지역구를 살리기 위해 인구 편차를 조정하는 방법은 없는지, 인구 편차를 맞추려 시·군·구를 인위적으로 나눌 수는 없는지 등 편법을 자꾸 생각하다 보니까 결국 백기를 들어버린 것이다. 이 점에서 획정위원들은 스스로의 처신을 반성해야 한다.

 내년 총선까진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획정위가 두 손 든 마당에 국회 정개특위에서도 결론이 쉽사리 날 리 없다. 이젠 여야의 정치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필요하면 여야 대표가 직접 나서 획정 기준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훼손하거나 선거법을 어기면서까지 게리맨더링을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논리 vs 논리
<중앙>“획정위 구조 바꾸어야” vs <한겨례>“원칙과 상식 지켜야”

<단계1> 공통주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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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년 선거구획정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법정기한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국회의 결단을 촉구했다. [김성룡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법정 시한인 13일까지 국회에 제출할 선거구 획정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물론 선거구를 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선거구마다 인구의 차이가 너무 크면 투표자 1인이 후보자의 당선에 기여하는 투표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이는 평등선거원칙에 어긋난다. 선거구 획정은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동일성도 어느 정도 보장되어야 하는 난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선거구 획정은 행정구역, 생활구역과 교통, 경제적·지리적 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만 하는 고도의 정치행위다. 그러므로 선거구 획정이 당리당략과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해 획정위를 국회 안에 두었던 과거와 달리 중앙선관위 산하 독립기관으로 설치하고 획정작업에 임했다. 하지만 끝내 법정 시한을 넘김으로써 선거구 획정 문제는 국회의 몫으로 돌아갔다. 현행 선거법상 국회가 선거구를 확정해야 하는 법정 시한은 총선일로부터 5개월 전인 11월 13일이다. 사안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국회가 선거구 획정의 법정 시한을 지킬지도 미지수인 상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4일 “선거구획정위는 독립적 지위를 인식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현행 선거법에 따라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경실련은 선거구획정위원회 위원들이 “각 정당 텃밭 의석을 지켜내기 위한 대리전을 벌인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단계2> 문제 접근의 시각차

 부정 선거구 획정을 막기 위해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획정위)를 사상 처음 설치했는데, 획정위 활동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 대해 한겨레와 중앙은 모두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획정안 실패의 원인을 짚어내는 두 신문사의 논조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법에 의하면 획정위원 9명은 여당 추천 4명, 야당 추천 4명, 그리고 선관위 인사로 돼 있다. 그런데 의결정족수를 3분의 2로 하는 바람에 꽉 막혔다. 위원들이 여야 성향별로 똘똘 뭉쳐 ‘6명 찬성’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중앙의 사설은 선거구 획정안 실패의 원인이 획정위의 불합리한 구성에 있다고 단적으로 지적한다. 이는 선관위 지명 1명을 제외하면 여야가 4명씩 나눠 선정하기 때문에 획정위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없었다는 의미다. “막판에 회생시키는 농촌 선거구 1석을 놓고 위원들은 갈렸다. 여당 성향은 강원, 야당 성향은 호남을 고집했다”고 중앙은 지적한다. 이는 선관위가 “각 정당 텃밭 의석을 지켜내기 위한 대리전을 벌인 것”이라는 경실련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숫자, 구체적인 선거구 획정 기준을 정해달라고 획정위는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여러 차례 요청했다. 당리당략에 얽매여 이 기준을 정하지 못한 건 정치권이다”라는 한겨레의 사설은 이번 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을 정치권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한겨레 역시 새누리당 의원들이 농촌지역구를 줄여선 안 된다고 획정위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정당 추천을 받아 임명된 획정위원들이 이런 압력을 견뎌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선관위의 구성이 정치권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라는 중앙의 지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계3> 시각차가 나온 배경

 중앙은 획정위원 9명을 여당 추천 4명, 야당 추천 4명, 그리고 선관위 인사로 구성한 것이 결국 선거구 획정안의 최종 결정권을 자신들이 가지겠다는 고도의 포석이 아닌가 의심한다. 획정위원이 자신을 추천해준 정당의 눈치를 살피며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에서 설령 획정안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그것이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거구 획정안이 총선 때마다 춤을 추지 않기 위한 해법은 없을까. 중앙은 그 답을 사설의 제목으로 내놓는다. “선거구획정위 3(여)-3(야)-3(선관위)으로 바꿔야 한다”는 제목이 그것이다. 여야 추천을 3명씩으로 하고 나머지 3명은 선관위에 주어 중립적인 선관위가 최종 결정권을 갖도록 해야 획정위가 정당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은 “선거가 6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선거구와 공천 방식이 안갯속에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며 정치권을 질타한다. 제17대, 18대, 19대 총선의 선거구 획정안 의결일이 선거일을 불과 한 달 남짓 앞둔 시점이었다. 이 같은 나쁜 선례를 재연하지 않겠다면 정치권은 마땅히 이런 질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겨레는 “아무리 정당 추천을 받았더라도 획정위가 독립기구인 이상 ‘원칙과 상식’에 따랐다면 이렇게 빈손으로 활동을 끝내진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한겨레가 말하는 ‘원칙과 상식’은 무엇인가.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인구 편차 2 대 1’이 한겨레가 말하는 제1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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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일
배문고 국어 교사

 한겨레는 이미 10월 5일자 사설을 통해 “선거구 간 인구 편차를 2 대 1 이내로 제한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농어촌 일부 지역구의 통폐합이 불가피해진 데 대해 해당 지역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자 현행법에 예외를 더 인정해 자치구 시·군의 일부를 떼 다른 지역구에 붙이겠다는 것이다. 이런 ‘유권자 빌려 쓰기’의 꼼수는 획정위원들 중 주로 새누리당 추천 위원들이 앞장서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적시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대로 최대 인구편차 2 대 1 원칙을 현행 선거구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농어촌 선거구가 9개 줄고, 수도권에서는 그만큼 늘어난다. 그러나 문제는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다. 획정위가 이런 정치권의 반발에 휘둘릴 까닭이 없다는 것이 한겨레가 주장하는 ‘원칙과 상식’이다.

김보일 배문고 국어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