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나 부모·자식 상봉 5건에 불과 … 북 평균수명 짧아 90세 이상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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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일 오후 3시30분(북한시간 오후 3시)쯤 금강산 상봉장에 북측 가족들이 들어섰다.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남쪽의 이흥옥(80) 할머니는 벌떡 일어섰다. 휠체어를 탄 이흥종(88) 할아버지를 한눈에 알아보고 “오빠”를 외치며 달려갔다. 60여 년의 세월도 오누이의 정을 가를 순 없었다. 충남 예산에서 살았던 이 할아버지는 6·25 전쟁 발발 직후 갑자기 실종됐다. 당시는 낮엔 국군이, 밤엔 북한군이 마을을 장악하던 시기였다. 이 할아버지는 남한에 남겨둔 딸 이정숙(68)씨도 65년 만에 만났다. 헤어졌을 때 겨우 세 살이었던 딸이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이 할머니가 정숙씨를 가리키며 “오빠 딸이야”라고 하자, 이 할아버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 할아버지는 정숙씨를 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한참 동안 눈물만 쏟았다.

고령화에 대부분 형제·조카 상봉

 남에서 온 손종운(66)씨는 이날 아버지 손권근(83) 할아버지를 65년 만에 만났다. 아버지의 명찰을 확인한 종운씨는 “태어나서 아버지 얼굴을 처음 본다”며 손 할아버지를 와락 얼싸안았다. 종운씨가 눈물을 닦고 “건강은 어떠시냐”고 묻자 손 할아버지는 “귀가 먹어서 잘 듣지를 못해”라고 답했다. 손 할아버지와 종운씨는 행사 내내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북측 김종근(85) 할아버지는 이날 상봉에서 남한에 살고 있는 조카들을 만났다. 조카인 김해수(64)씨는 가족 관계도를 꺼내 친척들의 안부를 전했다.

 이날 상봉에서 부부 또는 부모·자식 상봉은 5건이었다. 2010년 상봉 때 23건, 지난해 2월 상봉 때 12건이었던 것에 비해 크게 줄었다. 반면 형제, 자매끼리 또는 조카를 만나는 경우가 늘었다.

 매년 부부 또는 부모·자식 상봉이 줄어드는 건 고령화 때문이다. 북한 평균수명은 남한보다 짧다. 이번 상봉 때도 90세 이상 북측 고령자는 한 명도 없었다. 남한에 생존한 이산가족 6만6488명 중 80세 이상은 53.9%(3만5844명)다.

 ◆기자단 노트북 검열로 실랑이=북측 출입사무소 관계자는 이날 남한 기자들이 휴대한 노트북과 태블릿 PC에 저장된 파일을 전수 조사했다. 기자단이 항의하자 “법과 원칙에 따라 하는 것”이라며 검사를 강행했다. 북측은 2시간 동안 노트북 검사를 한 뒤 노트북을 돌려줬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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