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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그냥 그대로 예쁜 ‘노 메이크업’ 그녀 … 나 ‘또다시 사랑’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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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어폰’ 속은 은밀한 세계입니다. 이어폰에서 흘러 들어오는 음악은 오로지 나 혼자만 흡수할 수 있죠. 등교하거나 출근하는 지하철·버스에는 이어폰을 끼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2030 청춘들이 많습니다. 청춘리포트는 그 은밀한 사적 공간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20일 오전 7시30분 강남·신촌·홍대입구 등에서 2030 직장인·대학생들이 끼고 있는 이어폰을 잠시 엿들어 봤습니다. 요즘 청춘들이 직장이나 학교를 오가며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은 무엇일까요. 공개합니다, ‘2030 길보드 차트’!

청춘리포트 - ‘2030 길보드 차트’ 만들어봤어요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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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끝자락이 다가온다. 가을은 깊어가고 날은 점점 서늘해진다. 출근길에 나서는 마음 한구석도 쌀쌀해졌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3개월도 채 안 남았다. (헉! 또 한 살 더 먹게 생겼군 ㅠㅠ)

 마음은 바빠지는데, 몸은 자꾸만 침대에서 ‘10분만 더’를 외치며 웅크릴 정도로 게을러진다. (이게 다 차가운 새벽 공기 탓이다.) 결국 또 늦잠. 아침은커녕 우유 한 모금 흘려 넣을 시간도 없다. 고양이 세수를 겨우 하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왔다. 허한 속은 밥 대신 노래 몇 곡으로 채운다. 만원 지하철에 올라탄 내 어깨를 툭툭 치는 사람들. 이어폰을 꽂고, 두 눈 질끈 감고, 오늘만 짜증을 참아보기로 한다. 그래, 다 괜찮다. (뭐, 자꾸 괜찮다고 하다 보면 괜찮아지는 거 맞겠지?)

  10월 20일 아침. 우리(청춘리포트팀)가 서울 7개 지역(강남역·건대입구·광화문·대학로·여의도·신촌·홍대입구)에서 만난 2030세대 70명도 아마 이런 맘이 아니었을까. 노래가 주는 위로가 아니었다면 고단한 아침, 한 걸음도 나설 용기가 안 났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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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서울 7개 지역에서 기자들이 만난 2030 세대들이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듣는 모습.

 우리는 출근하거나 등교하는 청춘들을 붙들고 어떤 노래를 듣고 있느냐고 물었다. 한 명 한 명 이어폰을 슬쩍 빼앗아 엿들어봤다. 한 사람당 ▶지금 듣는 노래 ▶최근 일주일간 즐겨 들은 노래 5곡 등 총 6곡을 말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6곡을 다 부르지 않은 청춘들도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이 3곡만 반복해서 듣는다’는 식이다. 전체 응답이 다 해서 420곡이 안 되는 이유다.) 이번 청춘리포트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름하여 2030 길보트 차트!

 #자이언티 #노메이크업 급하다고 ‘생얼(민낯)’로 나왔으면 어때(ㅠㅠ). 이 노래를 부르는 남자는 자기 여자친구가 “그냥 그대로 너무 예쁘”단다. 맞다. 자이언티(Zion.T)의 초대박 히트곡 ‘노 메이크업(No Make Up)’ 얘기다. ‘아이라인 없이 웃는 예쁜 너의 눈웃음’ ‘메이크업베이스 지우니 빛나는 우윳빛 얼굴’이라니. 듣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말이다. 세상에 이런 남자들만 있으면 아침 준비시간이 30분은 단축될 텐데.

  물론 현실에선 속없는 남자친구가 카톡으로 ‘자꾸 신경 쓰여서 어떡해…올XX영에 가서 아이라인이라도 쓱 그리고 나와!’ 따위의 카톡을 보낸다. (보고 있느냐. 그럴 때 진짜 밉다.) 화장 지우기 무서워서 어디 같이 여행이라도 가겠니… 학교 친구들, 회사 동료들에게도 ‘너 오늘 어디 아프니’ 메아리를 부르는 내 얼굴, 나라도 아껴줘야지 어쩌나. 지역을 불문하고 7명이 이 노래를 가장 즐겨 듣는다고 했다. 2030 길보드차트 2위다. 얼마 전에 크게 히트한 ‘꺼내먹어요’도 그렇고 Zion.T는 씁쓸한 속을 달콤하게 달래주는 천부적인 재주가 있는 게 분명하다.

  #임창정 #또다시사랑 서른 안팎의 우리 팀. 그동안 떠나보낸 연인만 한 손으로 세기도 모자라다.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그동안 만난 사람 중 누가 제일 괜찮았어?”란 질문이라도 받으면 아득해진다. 분명 한때 내 곁에 머물렀던 사람인데, 또 그 기간이 짧지도 않았는데. 게다가 심지어 ‘내 마지막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왜 지금의 나는 네가 어땠는지 통 기억이 안 나는 거니. 내가 너(희들) 사랑했던 거 맞니. 이럴 때면 내가 울며불며 소중히 지켜왔던 사랑이란 게 참 덧없다, 싶다.

  그런데도 우리는 꾸역꾸역 어떻게든 연애를 이어간다. 분명 여러 번 해본 연애 맞는데, 나에겐 이번이 또 처음인 거 같아서. (건망증 아니다.) 지금 사랑 중인, 혹은 사랑을 바라는 2030들도 마찬가지 마음인가보다. ‘사랑, 언제나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처음인 듯 찾아오니까.’ 임창정의 ‘또다시 사랑’은 70명 가운데 8명이 가장 즐겨 듣는 곡으로 꼽았다. 이 노래는 2030 길보드차트 1위. 길거리를 오가며 요즘 청춘들이 가장 많이 듣는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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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리 #바람이나좀쐐 ‘외로움’을 곱씹는 것. 나름 철이 들며, 혹은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달라졌다 싶은 점이다. 부모·연인·친구, 누구도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날이 있는 거 아닌가. 기댈 사람이 있든 없든 결국 ‘내 번뇌’는 오롯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어느덧 혼자 있는 시간이 그다지 외롭지만은 않게 됐다.

  개리의 ‘바람이나 좀 쐐’는 그럴 때 들으면 좋은 곡이다. 물어보니 진짜 ‘바람이나 쐬고 싶어서’ 이 노래를 스트리밍으로 들었다가 혼자서 펑펑 울었다는 청춘들도 있다. 이 노래, 길거리에서도 술집에서도 심심찮게 나온다. 혼자여서 외로울 때도, 누군가와 함께여도 허전할 때도 다 이해해준다고 말해줘 고맙다. ‘조금 슬퍼 보이면 어때. 너만 그런 게 아닐 텐데.’

아무래도 ‘위로’는 대학생보단 직장인에게 더 필요했던 모양이다. ‘직장인의 메카’인 광화문 일대 응답자들은 차분하고 감성적인 노래들과 출근길을 함께했다. Zion.T를 비롯해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 아델(Adele)의 ‘메이크 유 필 마이 러브(Make You Feel My Love)’ 등이다. 건대입구·대학로·신촌 등 대학생 밀집 구역에선 ‘아이(I)’를 비롯한 태연의 첫 솔로앨범 곡을 외친 응답자가 많았다. 20대 초중반 남자들의 경우 가을답지 않게 상큼한 느낌이 드는 아이돌그룹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도 많이 들었다. 반면 직장인이 많은 광화문·여의도·강남역에선 여자친구 노래를 꼽은 사람이 없었다.(혹시 여자친구라는 걸그룹을 모르는 거 아닐까?) 최근 히든싱어에 출연한 보아나 여자 아이돌그룹 레드벨벳에는 6표를 모두 던진 골수팬도 있다. 반면 히트곡이 많아 손해 본 경우도 있다. 2030 길보드차트 순위엔 오르지 못했지만, 빅뱅은 6곡(9표)이, 김동률은 7곡(7표)이 고른 표를 얻었다. 가수별 언급횟수를 따져보면 빅뱅이 3위, 김동률은 5위다.

이지현·정현웅 인턴기자
채승기·조혜경·김선미·김민관·박병현 기자
wisel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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