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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TPP의 신규 가입국 1호가 돼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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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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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한
변호사·미 워싱턴DC 소재
아널드&포터 수석 파트너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에 나선 협상국들이 5일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 2013년 11월부터 표명해 온 입장을 재확인했다. TPP 가입에 관심이 있지만 TPP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철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신중한 접근법에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은 12개 TPP 창립 회원국 중 미국을 포함해 10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다. 한국이 이들 양자 협정으로 높은 수준의 무역 자유화를 달성했기 때문에 가입에 따른 긍정적인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많은 이가 주장한다. 또 TPP에 가입하려면 한국이 많은 양보를 해야 하며 기존 FTA보다 더한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우려한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한국이 TPP 신규 회원국이라도 돼야 할 절실한 이유가 있다. 우선, 가입 효과에 대한 엇갈리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의심할 나위 없이 전체적인 경제적 파급 효과는 긍정적이 될 것이다. 일부 연구는 4% 이상의 국내총생산(GDP) 증가를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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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한국의 기존 양자 FTA는 대체로 ‘무역협정의 황금 표준(gold standard)’이라 불리는 TPP보다 덜 포괄적이다. 기존 FTA와 TPP는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TPP는 한국이 보다 확대된 세계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TPP가 세계 전략적 측면에서 ‘정치적인’ 협정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TPP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평형추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외교·경제·군사 정책의 재균형을 꾀하는 오바마 행정부에 TPP는 아시아 회귀 전략의 핵심이다. TPP 통과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외교 정책 목표다. TPP가 오바마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외교 정책 유산이 될 것이라는 주장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이 점에서 TPP 가입이 한국에 안길 수 있는 무형의 이득을 외교 정책 시각으로 살펴보면 경제적 이득보다 오히려 더 크다는 계산이 나올 수밖에 없다. TPP 회원국들은 글로벌 총생산의 40%와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 블록이다. 한국이 TPP에 가입하면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경제 블록의 회원국 중 하나라는 위상을 확보하게 된다.

또한 한국의 TPP 가입이 가져다줄 지정학적 함의 역시 매우 크다. 특히 TPP는 한·미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아태 지역 경제 통합의 중추로서 입지를 굳히는 데 필요한 중요 무대를 제공할 것이다.

 이에 비해 TPP에 가입하지 않는 데서 오는 지정학적 악영향은 지극히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한국이 계속 TPP에 빠진 상태로 남아 있는다면, TPP와 경쟁 관계인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한국이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훨씬 도드라져 보일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외교·경제 정책이 미국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할 수 있다. 그런 해석이 옳건 그르건 말이다. 미국은 불가피하게 일본이 TPP의 아시아 회원국들에 리더십을 행사해 줄 걸로 기대할 것이다. 이는 일본이 미국의 주요 경제 동맹국이며 동아시아의 핵심이라는 기존 인식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TPP 협상이 완료된 지금 한국은 TPP의 첫 번째 신규 회원국이 되기 위해 합심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이 조기 가입을 모색하면 유리한 점이 많다.

그중에는 한국이 개별 회원국들과 국가별 고유 조건을 협상할 수 있다는 게 잠재적으로 포함된다. 예를 들면 한국은 나라마다 고유한 정부조달 부문이 다루는 기구와 활동의 ‘포지티브 리스트’에 대해 협상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은 투자, 국경 간 서비스 무역, 전자상거래의 국가별 리스트에 대해 유연성 있게 협상할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한국이 조기 가입을 모색해야 이런 유연성이 존재하는 부문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유연성은 축소될 수 있다.

 다행히 기회가 남아 있다. TPP가 발효되려면 미국을 포함해 모든 창립 회원국에서 승인·비준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은 창립 회원국들과 접촉해 한국 가입에 대한 조기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번 것이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은 법에 따라 서명 90일 전에 의회에 통보해야 한다. 대통령이 서명한 다음에도 의회는 법안 실행에 필요한 협상, 초안 마련, 표결 등 수개월이 걸리는 일련의 절차에 착수한다. 2016년 중 언제 끝날지 모른다.

 한국은 벌어 놓은 시간을 활용해 창립 회원국들과 가입 조건 협상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한국은 이미 2013년 TPP 가입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바 있기 때문에 입지가 좋다. 한국은 기존 가입국들과 국가별 고유 부문에 대해 협상해 최상의 조건으로 가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석한
변호사·미 워싱턴DC 소재 아널드&포터 수석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