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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북핵문제의 시급성을 확인한 한미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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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화려한 외교 의전은 거죽일 뿐
중요한 것은 후속조치와 행동
파트너십을 어디까지 끌어올려
북핵 문제 시급히 다룰지가 핵심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 워싱턴에서 두번째 양자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는 지난달 잇따라 열린 한·중, 미·중 정상회담을 이은 것이자, 2주 뒤 서울에서 열릴 한·중·일 및 한·일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외교전 가운데 가장 큰 분수령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회담은 박 대통령의 펜타곤 방문이 상징하듯 그동안 워싱턴이 우려해온 '한국의 중국 경사론'을 불식시키고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한 점에서 의미가 컸다.

회담에 대한 구체적 평가는 양국이 채택한 회담 공동설명서(Joint Fact Sheet)를 봐야한다. 이 설명서는 동맹 강화와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 그리고 뉴프런티어 협력 강화 등 세 부분에 걸쳐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한미가 합의한 ‘21세기 포괄적 전략동맹’의 방향성을 재확인하면서 협력의 지평을 추가 확대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회담의 성과를 평가해보자.

우선 한미가 북핵을 ‘최고의 시급성과 확고한 의지(utmost urgency and determination)’로 다루기로 합의한 게 가장 중요한 성과다. 과거와 달리 북한에 대해 별도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 자체가 미국이 북핵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그동안 북한에 취해온 ‘전략적 인내’는 평양의 '진정성 있는 변화'만을 기다리다 개점휴업 상태에 빠져 관리에만 치중해온 정책이란 비판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정상이 북핵의 시급성을 공개 언급한 것은 미국이 더는 북핵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주목할 점은 성명이 박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통일 비전'을 강력히 지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대목이다. 양국 정부는 이 대목을 바탕으로 우호적인 평화통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고위급 협의를 강화키로 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 주도의 통일을 사실상 공개 승인한 것과 같다.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로 야기된 위기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한 우리 정부의 대북접근법을 미국이 긍정적으로 평가해온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로 한·미가 대북 적대시 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고 언급한 점도 의미가 있다. '미제의 위협'을 핑계로 핵을 개발해온 북한의 논리가 허구임을 보임으로써 북한이 대화에 나오도록 압박하는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의 '동북아 평화 협력구상(NAPCI)'에 대한 미국의 공개 지지를 끌어낸 것도 회담의 중요한 성과다. 또 보건·기후변화·사이버 등 연성안보에서 미국과 협력 강화를 다짐하고, 우주와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힘을 모으기로 합의한 건 한미동맹을 새로운 지평으로 확대시킨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숙제도 적지 않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에 필요한 4개 핵심기술 이전이 불발된 점이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부 장관은 우리 측에 "조건부라도 4개 기술 이전은 어렵다"고 못박았다. 이는 미국 정부가 지난 4월 밝힌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이미 충분히 예견됐던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국형 전투기 핵심기술 이전 문제는 앞으로도 언제 해결될지 모를 장기적인 과제로 남게 됐다.

또 다른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이 미·중 간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한국이 목소리를 내달라고 촉구한 대목이다. 우리의 슬기로운 대처가 요구된다. 원칙적으론 미국이 주도해온 법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 확립을 환영한다고 천명하되, 그런 질서가 무력이나 강압 대신 현행 국제법을 준수하는 가운데 평화로운 방식으로 구축돼야한다고 강조해야 한다. 우리도 원유수송·무역 때문에 남중국해를 빈번하게 이용하는 나라인 만큼 이 지역의 안전 문제에 방관자가 돼선 안 된다.

앞으로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의 모멘텀을 살려 북핵 해결을 위한 국제적 동력을 끌어모으는 데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 중국 전승절 이후 열려온 한·중, 미·중,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는 공통의 이슈였고 곧 개최될 한·중·일 및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핵심 의제로 거론될 게 확실하다. 그런만큼 이번 회담에서 한·미·중 공조를 강화하고 한·미·일 협력을 복원키로 합의한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 시진핑 주석이 서울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고, 박 대통령도 임기 중 처음으로 아베 총리와 회담하게 됨으로써 동북아의 갈등이 조정 국면으로 전환될 전망이다.이런 상황을 적극 활용해 북한 비핵화 외교를 소생시켜야 하는 과제가 우리 어깨에 걸린 셈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박 대통령을 환대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외교에서 화려한 의전은 거죽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후속조치다. 두 정상이 합의한 ‘공유된 가치, 뉴프런티어’를 향해 한·미 당국자들이 양국간 파트너십을 어느 선까지 끌어올릴지, 북핵은 얼마나 시급성있게 다룰 것인지가 핵심이다. 양국이 곧바로 실효성 있는 행동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이상현(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