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숲 사이, 명상과 상상이 숨쉬는 미술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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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의 폐허’는 명화 ‘모나리자’가 미인 초상화에서 전쟁의 포화로 폐허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관람객이 오래 머물며 사진도 많이 찍는 인기작이다.

빽빽한 대나무 숲이 하늘을 가린 전남 담양 죽녹원로 119번지. 13일 오후, 반원구 두 개를 맞붙여놓은 듯 앙증맞은 건물 한 채가 바람에 출렁이는 가을 대나무의 청정함 속에 사람들을 맞는다. 때마침 열리고 있는 ‘2015 담양 세계 대나무박람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기웃기웃 문간을 넘나든다. 대나무 숲 하나로 연간 150만 명 손님을 모은 죽녹원 안에 첨단 현대미술인 미디어아트의 대표작가 이이남씨의 아트센터가 들어섰다. 정식 개관 전부터 하루 7000여 명이 찾아왔다는 명성에 걸맞게 ‘이이남 아트센터’는 지역 특성을 살린 차별화 미술관으로 눈길을 끌었다.

담양 죽녹원의 ‘이이남 아트센터’
생태·예술 결합, 지역 특성 잘 살려
정식 개관 전부터 하루 7000명 찾아

 1층 전시실은 이이남 작가의 대표작 10여 점이 밝은 조명 속에 경쾌하게 펼쳐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림 속에서 갑자기 폭격기가 날아다니고 핵무기가 터지면서 모나리자의 온 몸은 꽃과 피로 아수라장이 된다. 5분40초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디지털 화면 앞에서 관람객은 입으로만 평화를 외치는 서구 열강의 위선을 구경한다. 클림트의 관능적 유화 ‘키스’는 네모난 화면 속에 영화 속 유명 키스 장면이 명멸하다가 눈물방울로 화한다. 3분에서 20분까지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 작품들은 동서양의 명화를 뒤섞고, 사계절을 동시에 보여주며, 기기묘묘한 상상력으로 세계미술사를 종횡무진 한다.

 2층으로 올라간 관람객은 실내로 들어온 죽녹원을 만난다. 대나무를 소재로 한 이 작가의 다양한 작품이 어둑한 공간을 명상의 사당으로 만든다. 한국과 중국 화가들이 즐겨 그린 죽(竹)이 왜 사군자 중의 사군자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이이남 아트센터는 기획 단계부터 최형식 담양군수와 최석중 미래세움 대표이사가 의기투합해 콘텐트를 궁리했다. 담양 지역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려면 대나무 숲만으로는 길게 내다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예술과 기술, 과거와 미래를 결합한 위에 인류 문명이 헤쳐 나가야 할 환경 문제를 더했다. 천혜의 자연을 배경으로 ‘맑은 숨(Good Breath)’ 캠페인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최 대표이사는 “아토피와 스트레스 질환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대나무 숲의 자연치유 효과를 누리게 하는 운동”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이남 아트센터는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금으로 조성한다.

 지역과 문화가 맞춤하게 결합한 이이남 아트센터는 미래형 콘텐트 개발의 한 본보기로 남게 됐다. 생태와 예술, 디지털과 아날로그, 힐링과 관광이 저절로 궁합을 맞췄다. 전시장을 둘러본 고형권 창조경제추진단장은 “창조경제의 가장 좋은 사례를 봤다”고 평가했다.

담양(전남)=글·사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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