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황청 보수-개혁 갈등 본격화하나…"추기경 13명, 교황 노선에 반발"

중앙일보

입력

보수 성향의 추기경 13명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낸 비판 서한이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현지 언론에 유출됐다. 이들 보수파 주교들은 지난 5일부터 열리고 있는 ‘세계주교회의(시노드)’가 “결론을 정해두고 열리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교황에게 직접 반기를 들었다. 바티칸 내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파와 이에 반대하는 보수파 사이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바티칸 전문 언론인인 산드로 마지스테르는 이날 이탈리아 주간지 레스프레소에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수 성향의 추기경 13명이 시노드의 절차상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하는 서한을 지난주 직접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함께 하는 여정’이라는 뜻의 시노드는 가톨릭 내 주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황이 주교들을 불러 3주간 개최하는 회의로 현재 270명의 주교들이 참석한 가운데 바티칸에서 열리고 있다.

추기경들은 이 서한에서 “시노드가 동성애와 이혼 등의 문제에 대해 이미 정해진 결론을 손쉽게 끌어내기 위한 절차에 불과하다”며 교황을 비판했다. 변경된 시노드 절차에 따르면 우선 소규모 그룹이 각 주제에 대해 토론을 벌이게 된다. 이후 교황이 구성하는 위원회에서 토론 결과를 토대로 한 최종 결론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한다.

보수파 주교들은 “일단 토론 주제가 담긴 문서가 너무 편파적이어서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토론 단위가 너무 소그룹으로 구성돼 사전에 결론을 정해놓게 될 가능성도 제기했다. 동성애자와 이혼·재혼한 신자들에 대해 포용적인 진보적 주교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 보수파 주교들의 주장이다. 시노드의 최종 보고서를 검토하는 위원회 소속 위원들 구성을 살펴보면 교황이 일방적으로 임명한 사람들밖에 없다는 문제점도 서한에서 제기됐다.

마지스테르는 “이 비판 서한에는 추기경 13명이 서명을 했으며, 그 중 한 명이 시노드가 진행 중이던 지난주 교황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사가 나간 후 추기경 4명은 “문제의 서한과 관련이 없다”며 서명한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취임 첫해인 2013년부터 ‘가정’을 주제로 한 시노드를 소집했던 교황은 이번 시노드에서도 동성혼, 혼인준비와 동거, 별거와 재혼 등에 대한 내용을 주요 의제로 삼도록 했다. 교황은 그간 가톨릭 교회가 죄악시해온 동성혼, 이혼 문제 등에 대해 전향적인 생각을 종종 피력하며 교회 개혁 바람을 몰고왔다.

앞서 한 바티칸의 고위 성직자가 스스로 게이임을 공개한 데 대해서도 교황은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는 것이 진정한 신의 계획”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실수를 저지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해야 하며, 교회는 그를 받아들이고 함께해야한다”며 관용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반면 보수파 주교들은 “전통적인 가족관까지 흔들면 안 된다”며 엄격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기존 가톨릭에서 ‘중죄’로 엄중히 처벌하는 낙태에 대해서도 교황은 전향적이다. 지난달 교황은 “낙태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며 “한시적으로 낙태죄에 대한 사죄의 권한을 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보수파 주교들은 “낙태를 한 여성이나 시술을 한 사람은 곧바로 파문돼야 한다”며 현행 가톨릭 교리를 완화하는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서한에서 드러났듯이 가톨릭 내 보수파와 진보파 사이의 대립은 이달 말까지 이어지는 시노드 내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비난 서한을 의식한 듯 “정신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음모론에 빠져들지 말라”고 주교들에게 강조했다고 AP는 전했다.

하선영 기자 dyanmic@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