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가족] 출동 노팀장… 가족을 위해 앞치마 두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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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팀 노재현(45)팀장은 얼마 전 결혼 18년 만에 두번째로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아내가 "이번 생일에도 미역국 못 먹으면 같이 안 살겠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입니다.

매년 미역국 얻어먹을 줄만 알았지 아내 생일상은 차릴 엄두도 못 내는 남자, 어디 노팀장뿐이겠습니까. 미역국은 실패작이었습니다. 고기를 태운 데다 국간장 대신 진간장을 넣어 시커먼 미역국, 아이들이 입을 대다 말았다더군요.

아내와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줄 음식을 만들 수 없을까. 노팀장, 이번엔 토요일 점심상 차리기에 도전합니다.

*** 노팀장 요리학원에 가다

요리 학원 라퀴진(www.lacuisine.co.kr)의 도승원(33.여) 팀장이 도우미로 나섰습니다. 메뉴는 파스타(이탈리아식 국수)와 오픈 샌드위치(덮개용 빵 없이 빵 한 장 위에 재료를 올린 것), 오이 피클(절임)과 수박 셔벗(과일즙 등을 얼린 것)입니다. 노팀장이 파스타를 즐겨 먹느냐. 아닙니다. 주말 외식 메뉴로 늘 삼겹살을 선택하는 순도 1백% 아저씨 입맛인 걸요. 하지만 아이들과 아내가 좋아할 요리를 만들어야죠.

요리법이 적힌 종이를 받아든 노팀장, 식은땀을 흘립니다.

"파스타가 뭐지? 띵~하다."

어쨌든 강습은 시작됐습니다. 설탕을 듬뿍 뜨다가 선생님께 야단을 맞습니다.

"표면을 딱 깎아서 뜨세요."

양파를 썰다가는 눈을 훔칩니다. 양파 매운 건 모르고 가스가 새는 줄 알았답니다. 호박을 볶던 노팀장, 갑자기 중국집 요리사라도 된 양 팬을 퉁깁니다. 호박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가족들이 내가 만든 걸 맛있다고 해줄까? 겁난다."

선생님이 "내가 가르친 남학생 중 일등"이라며 제자를 다독입니다. 노팀장 입이 귀에 걸립니다. 쉿! 노팀장은 도승원씨가 가르친 유일한 남학생입니다.

*** 노팀장 실전에 돌입하다

토요일 오전, 장을 보러 갔습니다.

"하나만 만들면 안될까? 아니면 파스타만 빼자."

약한 모습을 보이며 기자를 설득하려듭니다.

"파스타가 메인인데요."

4만원어치 장을 보고 집에 와보니 호박.양파 등 몇몇 재료는 이미 냉장고에 들어있습니다. 노팀장, 장 보기 전에 냉장고를 열어봤어야죠.

둘째 아들 기석이(13)는 친구 생일이라며 아빠의 점심상을 마다하고 외출합니다. 아내는 남편이 요리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퇴근길에 음식을 사왔습니다. 손님을 굶길까봐 걱정됐답니다. 고맙습니다.

노팀장은 오픈 샌드위치를 접시에 담아 큰아들 현석이(16)에게 먼저 건넵니다.

"현석아, 먹을 만하지?"

"예."

"하나 더 줄까?"

"아니오."

현석이는 맨 빵만 몇 장 더 집어먹습니다. 이제 파스타를 만들 차례.

"또 뭘 만들려고?"

갑자기 아내가 제동을 겁니다. 하지만 샌드위치를 먹어보더니 생각을 바꿉니다.

"파스타 만들어야겠어요. 이건 못 먹겠다."

아내의 냉혹한 평가에도 노팀장은 꿋꿋합니다.

"오이 피클도 만들었어."

"음~. 이건 맛있네."

"어제 수박 셔벗 만들려고 재료를 다 사왔는데 TV 보다가 잤어. 오늘 아침에 설거지도 했거든." 갑자기 설거지 얘기가 왜 나오는 겁니까. 아내에게 자꾸 칭찬받고 싶은 게 남자 마음인가 봅니다.

*** 30점짜리 남편, 1백점 받다

큰아들 현석이가 나가야 한답니다. 벌써 오후 2시.

"배 안 고프냐?"

공연히 일을 벌여 아들을 굶긴 건 아닌지. 아빠는 마음이 아픕니다.

오후 3시30분. 점심 상차림이 이제야 끝났습니다. 아내는 파스타를 한 입 먹어보곤 젓가락을 내려놓습니다.

"도저히 못 먹겠어. 밀가루 맛이 확 나서…."

"밀가루 맛도 맛있지?"

노팀장, 얼굴에 철판 깔았습니다만 정작 자신은 접시를 비우지 못합니다. 아내는 남편이 음식 남기는 걸 처음 봤답니다. 아내에게 요리 채점을 부탁했습니다.

"오이 피클은 1백점, 오픈 샌드위치는 90점. 파스타는 89점이오."

원래 점수가 후한 편이냐. 아닙니다. 평소 남편의 점수는 30점에 불과한걸요. 아내는 "맛보다 정성이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합니다. 세상 모든 아내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요.

이경희 기자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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