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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금 간 미국금리 연내 인상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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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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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피셔

“(연내 기준금리 인상은) 예상일 뿐이지, 약속이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실세, 스탠리 피셔 부의장의 한마디가 글로벌 경제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Fed가 금리 인상을 내년으로 넘길 수 있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일 뿐이지 약속이 아니다”
Fed 실세 피셔 발언 미묘한 파장

 피셔 부의장의 발언은 11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에서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기간 중 열린 국제금융전문가그룹 G30 세미나에서다.

 피셔는 “첫 번째 금리 인상 시기와 뒤이은 금리 조정은 전적으로 향후 경제상황에 달려있다”면서 “상당한 불확실성이 경제 전망을 둘러싸고 있다”고 말했다.

 ‘연내 금리 인상’은 지금까지 Fed의 절대 다수설이다. 재닛 옐런 의장은 그동안 “기준금리가 올해 후반 인상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해왔다. ‘예상’은 통상 얼마든지 고쳐쓸 수 있다. 그러나 예상을 반복적으로, 그것도 이목이 집중될 때마다 하면 ‘약속’과 같은 무게감을 지닌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예상일 뿐, 약속이 아니다”는 피셔의 언급은 예상이 바뀔 수 있다는 쪽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봐야 한다. 견고했던 연내 인상론에 금이 갔다. 피셔는 Fed의 다른 간부들과 무게감이 다르다. 옐런과 함께 Fed의 얼굴이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부정적 평가를 여럿 언급했다. 예컨대 고용지표의 경우 “다소 실망스럽다”며 신규 일자리 창출이 8월에 13만6000개, 9월에 14만2000개에 그친 것을 예로 들었다. 실업률이 두 달 연속 5.1%를 기록하면서 Fed의 완전고용 목표(4.9~5.2%) 범위로 들어온 것에 대해선 비중을 두지 않았다. 해외의 성장 둔화도 거론했다.

 피셔 연설 중 의미심장한 다른 한가지는 일부 국가들의 조기 금리 인상 요구를 일축한 것이다. 신흥국 진영은 갈라져 있다. 중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흥국들은 미국이 제로 금리를 고수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은 “불확실성을 줄이는 게 낫다”며 미국에 금리인상 방아쇠를 당기라고 촉구했다.

 피셔는 “많은 신흥국 관리들이 (금리 인상에 대해) 충분히 준비돼있다고 느낀다 해도, 미국 금리에 관한 기대치 변경은 금융시장과 달러가치 변동을 초래하고 다른 나라 경제에 파급효과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 버튼을 섣불리 누르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피셔의 이런 언급은 한 달여 전 잭슨홀 미팅 연설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당시 그는 세계 중앙은행가들 앞에서 “Fed의 법적 목표는 미국 경제를 위한 걸로 정의돼있다. 미국 경제를 강하게 유지하는 게 글로벌 경제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다른 나라들이 충격을 받더라도 Fed는 ‘마이 웨이’를 가겠다는 뉘앙스였다.

 현재로선 Fed가 ‘연내 금리 인상’ 기조를 바꿨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기는 불확실하고 지표는 혼란스럽다. 이럴 때 2인자의 역할 공간이 있다. 항로 변경에 대한 신호는 보내놓고, 상황이 달라지면 물러서는 부담이 1인자보다 적다. 이것이 피셔 연설의 역할인지 모른다. Fed의 금리 인상이 내년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깜빡이에 불이 들어온 것 같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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